일상의 변론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의 핵심은, 죽음이 임박하거나 명백하여 그 시기를 알게 된 경우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사과나무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수도 있고, 그저 겸허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을 수도 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언젠가 닥쳐올 문제이지만, 여전히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의미가 있든 없든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한다.
죽음의 시기가 10년후라고 확정되면, 해야 할 일들이 꽤나 된다. 장기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들도 계획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 상당히 길고, 우선 순위도 매길 수 있다. 10년 남았으니 특정한 것을 미룰 수도 있다.
만약, 죽음의 시기가 1년후로 확정되면, 해야 할 일들은 이보다 적어진다. 장시간 소요되는 일은 목록에서 제외되고 실행에 유예를 둘 수 있는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이 또한 목록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우선순위는 더 철저하게 매겨진다.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내일 죽을 것으로 확정되면 해야 할 것이 더욱 단순화되고 명백해 진다. 많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타임플랜을 상당히 조밀하게 짜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의미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죽음을 전제로, 그리고, 그 시기를 최대한 가까운 시점에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인생은 매우 단순해지고 의사결정 또한 버겁지 않게 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죽음은 부고 소식에서나 전해 오는 타인의 문제로 생각하고, 아직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이 설정한 기준과 요건에 맞추려고 바둥대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상황이 중요하고 의미있는지 여부는 죽음을 전제로, 그 시기를 최대한 빠른 시점으로 가정해 보면 명백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로 얻은 결론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삶을 좀더 유의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