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종이의 매력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묵직한 소송기록을 가방에 들고 헉헉 거리면서 법원으로 걸어가는 것이 변호사의 모습이다. 소송기록이 가방에 들어가지 않을만큼 많은 경우에는 보자기에 싸거나 카트를 이용해서 법원에 출석하기도 한다.


S전자에서 퇴사한 엔지니어 출신의 의뢰인이 말을 건넨다.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 종이로 된 기록을 그렇게 들고 다니세요?


소송이 전자소송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종이을 이용해 기록을 다시 만들고, 변호사 역시 전자소송이라고 해도 종이기록을 사무실에 비치해 두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라는 것이 답변이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의뢰인에게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듯 하다.


스타일을 아날로그적인가, 디지털적인가로 나누어 볼 때, 아날로그에 가깝다. 종이가 주는 질감, 색감, 정서적 안정감, 고정성 등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화면으로 글을 읽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그 이면의 의미나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촌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책, 종이의 여백에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메모해 두는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재차 확인하면 참으로 재미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디지털은 그런 매력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종이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물리적 공간은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 물건의 하나이지만 일정한 교감이 생기는 듯 하다. 디지털은 찾으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재하지는 않는다.


종이는 제조에 있어 환경을 훼손하고 비용이 상당히 소요된다. 디지털은 터무니없는 비용으로 종이가 함축할 수 있는 내용 이상의 것을 함축할 수 있지만, 종이의 유한성이 사람의 그것과 닮은 듯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종이 재활용기술이 발전해서 최초 생산된 종이의 90% 이상이 재활용되고 있다.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종이가 좋은 이유는 손때, 그리고, 페이지별로 대면한 느낌과 순간이 간직되어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효율성, 가성비라는 기준은 나로 하여금 종이를 버리게 만들지 못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후회되거나 기분좋은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