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허용되는지, 제재를 받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다리를 뻗어본다. 조직의 명령, 스타일,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느 수준까지 개인적인 방식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 개인적 편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아랫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다리뻗기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다리뻗기가 상당히 허용되는 분위기의 조직, 이를 수용할 줄 아는 상사나 리더는 긍정의 존재가 되지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거나 아예 허용하지 않는 상사나 리더는 부정의 존재가 된다. 꼰대라고 부르는 존재는 후자에 가깝다.
어느 조직을 '가족적'이라고 부르는 경우, 아랫사람의 다리뻗기가 용이하게 수용되는 분위기의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아랫사람의 방식, 요구사항이 보다 쉽게 관철될 수 있고,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아랫사람의 다리뻗기를 용인해 줄 것인가. 좋은 상사, 좋은 사장의 이미지 유지를 위해서 아랫사람이 자기 이익과 꾀를 부리는 것을 용인해 줄 회사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직원이 말했다. 이전 직장에 비하면 천국이에요. 엄마가 저더러 평생 이 회사 다니라고 했어요. 하지만, 1년, 2년 지나자 그 직원은 불평이 가득해진다.
사람이 간사한 것은 편하면 편할 수록 더욱 편한 것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이익을 더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막되먹은 상사나 사장한테는 찍소리 못 하면서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려는 상사나 사장에게는 다리를 뻗어 보려고 한다.
검은 머리 짐승은 품어서는 안된다는 옛말에 확증을 더 해 주는 셈이다. 내가 봉급쟁이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능력이 있다면 상사나 사장이 되었을 것이다. 고민, 고통의 깊이가 다른데, 어떻게 꼭 같은 대우를 원한다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