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안전하게 주차해 놓은 차를 누군가가 박아서 부서졌다. 너와 내가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았지만 제3자가 개입해서 관계가 깨졌다. 경쟁상대만 이기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3자가 승리와 성공을 가로챘다. 행복한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형트럭이나 버스가 덮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일면식도 없는 자가 마구 칼을 휘둘러 애먼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 배를 태워 수학여행을 보냈는데, 돌아온 것은 싸늘한 주검이거나 그 주검마저 어디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삶에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한시바삐 살려고 노력하더라도 제3자에 의해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제3자는 알고 지내던 사람일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차이는 배신감을 느끼느냐, 황당함을 느끼냐에 있을 뿐이다. 어떤 상황이든 결국은 슬픔과 상처로 귀결된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현생에서 벌을 받는 것인가. 복수라는 관념으로 고통을 겪을만큼 제3자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일까. 납득할 수 있는 상황보다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악인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 했던 일들이 제3자에 의해 발생할 경우, 수습의 동력을 자발적으로 만들기도 힘들 뿐 아니라 책임의 소재가 외부에 있기 때문에 불행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 상황을 원상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도 제3자에게 있는데, 그 제3자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실수로 치부하거나 죄송하다는 말뿐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 시절은 예상외로 타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나의 역할, 직업적 활동과 사회적 행동이 퍼즐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의무와 책임의 방기는 결국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매우 연약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세분된 분업사회는 그만큼 피스가 많은 퍼즐처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나의 나태와 무책임한 행동은 제3자에게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악연으로 연결된 것처럼 타인에게 악인의 행동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