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선택과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를 점검할 때 논리적인 결론이었는지, 수학적 통계적으로 타당한 것이었는지, 인과관계에 의해 귀결된 것이었는지 따져보게 된다.
사람들은 실재 이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들도 조밀하게 강구한다. 이제 그 방법과 계획에 따라 매번 크고 작은 결정과 선택을 하면 된다.
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선택들, 배우자, 거주지, 직업, 진로 등을 선택할 때 준비해 둔 계획과 잣대에 의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통계적, 수학적으로 타당한 사고를 거쳐 결정하지 않고 감각과 감정에 의해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최상이거나 최선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적당'하다는 평가를 덧붙인다. 수립한 계획과 메뉴얼, 여러 평가잣대에 의하면 최상과 최선은 다른 곳에 있음에도 '적당'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와서 내린 결정과 선택을 위로한다.
'적당'하다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기준에 의해 어림짐작으로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히려 최선, 최상의 결론보다 더 큰 위로와 만족을 얻는다. 합리적 사고에 의하면 그런 위로와 만족은 얻을 수 없다. 선택과 결정을 감정과 감각에 의해 하였을 경우에 또다른 감정과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림짐작에 의한 선택과 결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결정이므로 큰 비난도 책임도 피할 수 있다. 본인도 다시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저 어느 수준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어림짐작하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이지만 타인에게는 추상적인 것이 '적당'이다. 누군가 '적당히 좀 해라!'라고 말한다면 듣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제시어가 아닐 수 있다.
삶은 희망의 측면에서는 어슴프레하지만 책임의 측면에서는 지독하게 체계적이다. 어림짐작이 운 좋게 맞아 떨어져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다 주면 다행이지만, 운 나쁘게 잘못 맞아떨어지면 고통과 슬픔은 '적당'하게 주어지지 않게 된다.
몇번이나 경험하면서 다음 번에는 치밀하고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다짐하더라도 일정한 순간이 되면 또다시 어림짐작으로 결정하려고 든다. 해결책은 어림짐작의 수준을 높이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