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황희 정승은 고려 공민와 때부터 조선 문종 때까지 90세를 살면서 58년간 관직생활을 했다. 삼정승으로 24년, 영의정으로 19년을 지냈고, 청렴결백한 명재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사료에 의하면 황희 정승도 알려진 것과 달리 뇌물 관련, 사건 조작 등 일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전해지는데로 믿기로 한다.
세종대왕이 암행에 나섰다. 그러다 황희 정승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황희의 집에 들렀다. 황희의 집은 담장이 허물어져 있고 방 안에 멍석이 깔려 있고 책만 가득했다.
"바닥에 왜 멍석을 깔아 놓았습니까?"
"등 가려울 때 멍석에 비비면 시원하옵니다"
황희의 집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고 세종이 물었다.
"천장에 구멍은 왜 뚫어 놓고 사십니까?"
"비가 올 때 새어드는 빗물을 받으면서 가난한 백성들의 생활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고관의 집이라면 담장이 높고 방 안에 카펫이 깔려 있고 지붕은 첩첩기와로 튼튼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종의 상식도 그러 했을 것이다.
황희는 소문대로 청렴하게 생활했고, 그 소문이 사실임을 임금에게 확실히 확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민망한 상황을 재치있게 해학적으로 설명했다.
권력이 붕괴하고 부폐하는 것은 권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넘치기 때문이다. 황희의 이력을 보면 임금과 버금가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실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몸소 내려 놓고 검소하게 생활함으로써 오랜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백성들의 고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고관들이 새겨 들었으면 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