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해답을 얻고 싶어하는 쪽에서는 조급하다. 최대한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한 얻고 싶은 해결책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려운 곳에 십자손자국을 낼만큼 꼭들어맞는 답을 얻은 경험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적다.
이런 결과는 질문하는 사람의 태도 때문이다. 쉽게 답을 얻고 싶을 뿐, 적확한 질문을 하기 위해 처절하게 고민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전문가에 대한 질문일수록 그 현상이 심화된다.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의 의도와 대내외적인 의도를 파악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질문을 시작한다.
리턴되는 답변이라고는 애매모호할 뿐이다. 답인듯, 아닌듯, 혼란스럽고 답을 듣기 위해 무언가 수고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 그 해답의 퀄러티가 혼자 고민할 때보다는 질좋을 것이라고 위안해 볼 뿐이다.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찝질한 느낌이 여전히 뇌리에 남게 된다.
얻고자 하는 해답에 근접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려면 질문이 예리해야 하고, 그런 질문을 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부도 하고, 질문을 들을 사람 이외에 여러 사람과의 대화와 어드바이스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질문자는 쉽고 가볍게 해답을 얻고자 하는 바램 때문에 질문이 결국은 무뎌지고,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고작 스스로 알듯한 애매한 메아리 뿐이다.
"질문있나요?". 강연자가 하는 무서운 또다른 질문이다. 이 질문자 또한 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잘 귀담아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질문은 단순하고 짧을수록 만족스러운 답을 들을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을 여러번 수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