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ny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평변호사 Jan 04. 2019

유진 초이가 사랑받는 이유

일상의 변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종영이후 몰아보기에 빠져 살고 있다. 극적 구성이나 출연자들의 연기력 등에 대한 평가는 삼가하고 유진 초이는 왜 많은 여인들로부터 연모를 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 러시아제 볼트액션을 선물한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장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일 것이다. 유진 초이는 '애기씨'에게 꽃이나 명품 불란서 양장이나 양화(구두)를 선물한 적이 없다. '애기씨'의 낭만은 변복하고 총을 쏘는 일에 있고, 꽃으로 살아도 될텐데라고 유진 초이가 말하자 자신은 불꽃이라고 대답했다.


'애기씨'가 가장 원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자신에 대한 응원과 위로에 있었다. 이쯤에서 유진 초이는 과거 추노꾼이었던 배우들이 운영하는 전당포를 통해 불법으로 총을 구해 헝겊으로 둘둘 말아서 약속도 하지 않은채 사격연습장인 움막으로 간다. 그리고 슬쩍 러시아제 볼트액션이라며 총을 건넨다. 정확성이 높지만 무거운 총이기 때문에 총을 드는 연습부터 하라며 스킨쉽을 시도하는 유진 초이에 대해 '애기씨'는 '배움의 속도가 늦을 것이오'라며 흐믓해 한다. 정당한 스킨쉽을 허락받는 유진 초이는 분명 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유진 초이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구동매, 김희성의 행동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구동매는 사실 '애기씨'에게 도움이 되는 여러 사정을 만들지만, 과격하고 원하지 않는데 보이지 않게 애정표현을 자기 방식으로 행한다. 강제로 옷자락을 당기는가 하면, 의병활동하지 말라고 머리카락도 잘라버린다. 스키쉽은 커녕 '애기씨'로부터 '죽여버리겠다'라는 무서운 말만 듣는다. 김희성은 제도적으로 '애기씨'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 수 있는 지위에 있지만, 그 역시 '애기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 하고, 돈쓰고 마음쓰고 노력해 보지만 '애기씨'의 마음을 얻는데서 요원해져 버린다.


상대방이 채식주의자인데 투플 소고기를 가져다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랑받으려면 상대방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 생각에 없는 척 은근하게 돕는다


아버지 이완익의 야심에 의해 일본 노인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갔다가 온갖 가학적인 고통을 당한 뒤 남편을 독살한 후 상속재산으로 한국에 글로리아 호텔을 지은 쿠도 히나(이양화)에게 가장 큰 약점은 남편을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사체검안서이다.


쿠도 히나는 사체검안서를 손에 넣기 위해 아버지의 집에 잠입했다가 '애기씨'하고 격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체검안서는 유진 초이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고 쿠도 히나에게 이것도 태우라며 사체검안서를 건네준다.


유진 초이의 선행(?)은 구동매의 구명, 미군총포를 훔친 장포수의 절도죄를 은닉해 주고 미대사관(로건)의 가족 식모생활을 하는 조선 여자아이의 일본군으로부터의 강도행위로부터 구해주는 등 러닝타임 내내 계속된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은 외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대놓고 도움을 받는 사실이 드러나면 크게 달갑지는 않다. 자존심이 걸리기도 하고, 도와주는 사람의 으스댐에 기분이 상할수도 있다. 은근히 돕는 사람의 매력은 계속 생각나게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 누구나 존중해 준다


미국물을 먹고 자라서 재수없을 것 같지만 유진 초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유진 초이는 함안댁, 행랑아범, 역관, 추노꾼, 도공, 주모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주변인물들에 대해 차별없이 존중하고 예를 갖춰 대우해 준다.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다. 외부대신 이세훈, 이완익, 다카시 등 당대 세력가들은 사람들로부터 외경의 대상일뿐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이완익은 말한다. '그 조선외양을 한 미국 아새끼는 어드렇게 하길래 사람의 마음을 다 얻나 말인가, 나는 돈을 뭉치로 써도 안되는데 말이야'라는 말속에서 유진 초이의 인기비결은 요약된다.


# 행동에 앞서 숱하게 생각한다


백정이었던 구동매가 일본에서 야쿠자가 된 뒤 조선으로 건너와 제일 먼저 행한 것은 복수였다. 자신과 어머니를 업신여긴 동네 아줌마들을 칼로 베고, 가장 업신여김을 베푼 아줌마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린다. 평생 기어다니며 반성하라는 취지라고 구동매는 살려주는 이유를 짧게 말한다.


유진 초이와 그의 상사 카일 소령이 조선에 발령받아 맥주를 마시면서 나눈 대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카일소령이 '너의 복수는 어떻게 되어가냐'라고 묻자 유진 초이는 수도 없이 복수를 해 봤다고 한다. 머리 속으로. 하지만, 복수가 가지는 허무함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는 투로 대꾸한다.


유진 초이의 신중함은 여러 장면에서 연출된다. 의병인 게이샤를 구출할 때, 다카시의 여러 악행에 대응할 때, 자신의 양아버지 선교사 요셉의 살인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인 끝에 의병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고종의 예치증서를 반환해 주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유진 초이의 행동하기에 앞서 고민하고 번민하는 태도는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낸다.


생각끝에 나타나는 행동은 비교적 갈등을 적게 빚기 마련이다. 유진 초이는 자신의 상전인 김희성의 부모들을 용서하고, 김희성도 용서한다. 유진 초이의 복수는 역적을 몰아내는 것으로 극을 장식한다.



주인공이고, 배우가 이병헌이기 때문에 그 아우라와 연기력, 수없이 이루어졌을 퇴고에 의한 대사 등 여러 요소들이 유진 초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인 인물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냈을 것이다. 하지만, 외적 요소를 제하고 인물 자체만을 두고 평가해 보았을 때, 유진 초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생각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라가 어려우면 관리도 굶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