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볼 수 있는 남은 기회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동거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와 관계없이 어머니는 매일 마주친다. 자식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 사랑표현보다는 짜증과 침묵을 더 자주 표현한다. 부모는 잔소리(사실은 걱정이 섞인 조언)를 더 많이 실행한다. 자식은,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이 화합과 평화보다 간섭과 걱정, 회피와 거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심과 달리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자식의 교만 앞에 과잉과 기우로 변하고 만다.


부모를 사랑하고 그것을 가능한 자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상태에서 부작위나 반대행위로 반사적 행동을 하는 것이 자식들의 습성이다. 부모는 자식의 습성적 행위에 관계없이 항상 자식을 염려하고 할수 있는 한 조언을 한다. 자식은 그것을 잔소리로 여기고 대부분 무시한다. 하지만, 부모를 매일 본다는 사실은 그런 못된 말과 행동의 결과를 상쇄시킬만큼 또다시 새로운 사랑과 애착을 발생하게 만든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자식들은 자유롭다. 가끔은 부모의 존재가 인식에서 사라질때가 있다. 교만할수록 비례해서 부모를 인식에서 망각할 때가 더 빈번하다. 떨어져 있는 부모에게 매일 연락하는 자식도 있고, 정기적으로 부모를 만나는 자식도 있다. 하지만, 일년중 특정한 날에 부모를 만나는 것이 부모와의 전체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년에 두번 부모를 만나고, 부모가 90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부모가 70세라면 향후 40회 정도 부모를 만나게 된다. 부모의 나이가 더 많거나 생존기간이 짧아지면 그 횟수는 감소한다. 정기적 만남을 특정한 사유로 거르게 되면 그 횟수는 감소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모를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현듯 효성스런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더 자주 연락하고 할수만 있다면 더 자주 직접 찾아가 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야심찬 의지로 가슴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간만에 전화를 걸어 '사랑합니다. 오래도록 곁에서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뭐해요?". 부모가 그 순간 하고 있는 일이 진실로 궁금해서 이 따위 멋없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일까. "어, 왠일이냐?". 부모도 갑작스런 자식의 연락에 통화시도의 이유를 묻는다. "그냥요". 야심찬 의지와 달리 통화는 순식간에 종료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몸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발전적이다. 부모는 그것으로 충분할테니까 말이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능한 더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보여드려야 한다. 기회가 몇번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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