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나는 어릴 적 잡기에 능했다. 그래서 공부를 그럭저럭 했지만,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축구, 농구, 구슬 따먹기, 딱지, 짤짤이, 장기, 바둑 등 어느 정도 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너는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없으니 교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성격이 급한 탓에 선생님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나름의 잣대로 판가름 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일정 부분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있었다.


7세 아들 녀석이 축구교실을 다니는데, 이 축구교실 운영회사의 지점별 아이들의 축구시합이 있었다. 종합운동장을 대여해서 아주 성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들 녀석이 축구교실을 다닌지는 6개월 남짓이라고 들었다. 한번도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아내와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잘 하더라고 전하는 말을 듣고 그럭저럭 하나 보나 했다.


나는 운동신경을 제법 갖추고 있어서 운동을 곧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느 운동모임이든 나오라는 연락을 많이 받는 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돗자리에 점심과 간식, 음료수 등을 등에 메고 아이들을 이끌고 축구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상상외로 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축구팀은 십수팀이 있어 토너먼트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드디어 나의 아들 녀석의 경기를 관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같은 팀의 다른 녀석이 2골을 넣는 동안 나의 아들은 의미없는 달음박질과 헛발질, 그리고, 상대 수비에 부딪혀 픽픽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속에서 부글부글 천불이 끓어 올랐다. 운동을 조금 할줄 아는 사람들은 나름의 승부욕이라는 것이 있어서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나는 내가 어릴 적 그랬듯이 골을 넣던지, 달리기를 1등 하던지 해서 타인의 주목과 이목을 끌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나의 아들 녀석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너무나 형편없는 플레이에 경기가 끝나고 내게 다가오는 아들이 꼴보기 싫었다. "너 그것 밖에 못 하냐"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잘 했다. 고생했다"라고 말했다.


순간 2골을 넣은 아들의 친구 녀석이 나의 아들의 모습이기를 바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피곤했는지 코를 곯면서 차에서 잠에 빠졌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의 플레이에 대한 불만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에게 일곱살 난 아들에게 무얼 기대하냐고 반문했지만, 한번 일어난 성질이 좀처럼 가시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베란다에서 창문을 보며 생각했다. 아들이 골을 넣는 장면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번도 축구교실에 참석해서 아들이 축구를 하는 장면을 지켜봐 주지 못 했으면서, 아빠가 자기 축구하는 모습을 보러 왔다는 사실에 공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내 쪽을 바라보던 그 눈망울에 대한 답례는 화난 얼굴이 고작이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반장이 되고, 타인에게 칭찬을 받기를 바라는 욕구는 오롯이 나의 욕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일정한 시간동안 아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지 않았고, 나의 욕심을 채워 줄 수 있는 도구로 삼았던 것이 분명했다. 부끄러움이 밀려 왔다.


앞으로 나는 자식이 나의 기대와 욕심에 못 미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자식에 대해 실망하기를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나의 부모도 나에게 실망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자식은 믿고 기다림으로 대해야 하는 존재이다. 나의 욕구와 욕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자식에 대해 실망한 나의 모습이 부끄럽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들을 바라봐 주지 못 했던 나의 편협함과 조급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들, 다리에 알배기도록 열심히 뛰어 다니느라 고생했다. 욕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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