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충분할만큼 있으면 만족할 듯한데 늘 필요조건이 따라 붙는 것이 몇가지있다. 그 중 '돈'이 그렇다. 돈이 많다고 분류되는 사람, 100억쯤이라고 가정해볼까. 아무리 생각해 보더라도 보통의 우리들에게 그 사람은 지극히 부자이고, 더 이상의 돈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100억은 아직인 금액이고, '더 모어, 더 베터'이다.
돈은 필요가치인가!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돈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충분한 액수를 정하려고 마음먹으면 정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생계유지적 차원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 의식주 수준을 높이려고 하는 순간 돈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 된다. 그 순간부터 돈은 추노꾼의 노비처럼 된다. 계획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정한 돈이 필요하고, 생활수준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평가절하받지 않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돈은 인격과 존엄을 높여줄 수 있는 가치가 된다.
돈이 물건이 아닌 가치라고 했을 때, 그 가치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추구해야 할 가치란 보편타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가치로서 돈을 추구하는 삶이란 세속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세속적이라고 손가락질받더라도 돈만 가질 수 있다면 영혼을 파는 일 이외에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되어있다. 어쩌면 영혼도 세일할지 모른다.
세상에 독이 되는 돈들!
돈이 가치로 여겨지면서 지나친 욕구와 지나친 결핍에 빠지면 독이 될 수 있는 돈을 구별하지 못 하게 된다. 풍족한 양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더 인색해지고, 부족한 돈을 채우느라 불법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돈으로 직업과 지위, 권력을 매수하려고도 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인격적 품위와 도덕, 윤리 따위는 안중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돈으로 인심을 사려고도 하고, 제품의 품질을 사려고도 한다. 돈으로 함량미달의 함량을 사려고도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사려고도 한다. 일정한 돈을 벌기위해서는 일정한 기간이 필요함에도 그 기간을 훌쩍 건너뛰는 것이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과 같은 돈, 흐름을 밝히기 민망한 돈, 적은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입금되는 돈. 초심을 잃게 하고 교만에 물들게 하는 돈. 언젠가 자유의 구속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돈. 세상에는 독이 되는 돈들이 있다.
무시할 수는 없지만 태연한 척 할수는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돈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수준에서 열위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따라잡을 수 없는 타인은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체념할 줄 안다. 하지만, 자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타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하고, 현재로써는 돈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떤 식으로든 비슷하다고 평가된 그 타인 수준에 걸맞는 돈이 있어야 할 듯 하고, 초과되면 더 좋다.
독이 되는 돈을 찾게 되고, 식별의 능력은 둔감해진다. 따라잡지 못하거나 영원히 뒤질까봐 조급함이 생긴다. 돈의 부족상태가 지금 잠시 그럴 뿐인데, 인생 전반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고, 열등감마저 생긴다. 월소득이 불만이고 현실 전체가 불만이다. 없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도, 발목을 잡았던 특정한 사건과 상황들이 모두 불만이다. 불만의 캡슐을 깨기 위해서는 독이 든 돈이라도 손에 들어오기를 바랜다.
실제 돈이 부족해서 돈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돈 자체에 대한 집착과 돈을 통해 비교수준과 동등하거나 높은 위치를 점하지 못할것 같다는 불안이 집착을 만든다. 비교에 의해 열등감에 시달리고, 현실에 불만을 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독이 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실행행위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