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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Apr 26. 2016

개와 늑대의 시간

윤소평변호사

#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뉘엿하게 질 무렵 노을이 지고, 모든 사물이 붉그레하게 물들어 '기르던 개인지, 해침을 당할 수 있는 늑대인지'구별할 수 없는 시간, 낮과 밤의 중첩으로 모호한 시간의 변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함에 따라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시간, 이를 가리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한다.


사냥꾼이라면 총을 어디에 겨누어야 하는지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자칫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를 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의미를 확대해 나가면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시간적 의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 나아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의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개와 늑대는 DNA가 동일하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적용될 수 있는 시간과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붉게 보일 뿐이므로 어떠한 선택도, 행동도 할 수 없다.


# 누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할 수 있나


사람은 사람으로 빛나기도 하고, 사람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빛을 잃을 수도 있다. '귀인을 만난다'는 말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악인의 눈에 들면 삶이 피폐해지고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개와 늑대의 구별은 가시거리를 짧게 하면 구별이 가능할 수 있지만, 사람의 경우는 가까이에 두나 거리를 유지하나 '그'가 동료인지, 적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필요에 의해 적이 동료가 될 수 있다.


# 내가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는 그들은 아군이고, '개'이다


인간관계는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아군의 위치가 쉼없이 변한다. 그런 변화는 조직의 규모에 관계없이 변화의 속도와 주기, 규모의 차이를 보일 뿐, 항상 일어난다.


내가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그들에게 계산이 설 경우 그들은 사냥개로 변신한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계산이 설 경우 그들은 늑대로 돌변한다.


이러한 개와 늑대의 구별문제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가장 눈에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영역일 것이다.


이익이 되면 집합하고, 이익이 안 될 경우에는 분산하는 것이 정치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그다지 의아하거나 충격적이지도 않게 납득되는 것도 정치이다.


정치는 동료이자 아군이었던 존재를 가장 심하게 헐뜯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총선이후 각 당파에서는 헤게모니 쟁탈로 다툼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 군주는 중상모략,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 - 마키아밸리 군주론 중에서


마키아밸리 군주론에 보면, 군주는 중상모략에 능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말은 군주는 사람들간에 정치를 해야 하는데, 필요하면 사람을 등용하고 불필요할 경우에는 내쳐야 하는 상황을 명분을 잘 내세우고, 충성을 야기시키기 위해서 제대로 미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정권유지가 오래도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정치다


배우자와의 관계나 자식과의 관계, 직장에서 상하관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동기들과의 관계, 매출처와의 관계, 매입처와의 관계, 선후배간의 관계 등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인간관계는 정치적 작용이 이루질 수 밖에 없다.


모든 관계에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모가 아가페적으로 사랑을 쏟아 붓는 것처럼 보여서 정치가 필요없을 듯 하지만, 최소한 자식으로부터 부모는 '고맙습니다'라는 정서적인 대가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 말을 듣기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하다.


# 동료, 동기가 무섭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두려워 해야 한다


이종오의 후흑(厚黑)학(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 버금가는 처세술에 관한 저서)에 따르면 나를 잘 아는 자는 옆에 두고 귀히 쓰던지, 아니면 숙청해야 한다라는 기술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자는 현재는 충성스러운 사냥개였더라도 그가 딴심을 품으면 제어할 수 없는 무서운 늑대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유방은 한신을 항우를 꺼꾸러뜨리는데, 귀중하게 등용했다가 그가 늑대로 변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숙청했다. 토사구팽이 그 유래다.


동문수학, 동기, 동료가 함께 고통을 나눌 때는 그지없이 소중한 존재이지만, 승진, 합격시험, 수익배분 등에 있어서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힐 경우에는 이들만큼 무서운 늑대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내 동기이자 동료이다.


# 이런 생각으로 너무 삶이 삭막한 것이 아니냐고 느껴지는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는 리어왕이 세 딸 중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두 딸에게 자산과 권력을 나누어 준다. 세째 딸은 귀에 달콤한 맹세를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나누어주지 않는다. 리어왕이 레임덕에 걸리자 두 딸은 아버지 리어왕에게 등을 돌리고, 아버지를 조롱하고, 그의 수행기사들을 내쫓았다.


셋째 딸 코딜리아는 아버지에게 "저는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제 마음을 입에 담지 못합니다. 저는 전하(아버지)를 자식된 도에 따라 사랑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는데, 리어왕은 셋째가 미온적인 답변을 하자 내친다. 이 같은 상황을 알게 된 프랑스 왕은 그를 왕비로 맞는다.


그래서 인생은 고독한 것이다. 자식이든 배우자든,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 불만의 화살이 돌아오게 되어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너무나 각자의 이기주의의 총화이고, 삭막하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 매니지먼트


관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총량이 감소할 수 있고, 제로에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사랑의 총량이 증가할 수도 있고, 사냥개에서 늑대로 변모하지 않도록 방부제가 될 수도 있다.


꾸준한 자기관리는 기본이고, 관계에 대한 모니터링과 피드백만이 삭막한 인생을 초래할 가능성을 줄이고, 늑대로부터 침해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절대로 나의 절대적인 생각과 양심은 누군가에 대해서 들켜서는 안된다. 내 생각이 타인에게 전부 읽힐 수 있는 상황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나의 사상과 감정이 전부 읽히는 순간, 타인은 그것을 이용해 꿀맛이 나지 않는 경우 언제든지 늑대로 이직할 꿈을 꾸기 시작한다.


참으로 세상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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