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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l 17. 2019

블랙 독, 우울, 공인의 자살

일상의 변론


이은주, 죠지 마이클, 정두언, 노회찬, 노무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무개.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능동적인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할만큼 애착을 가질만한 것이 이승에는 없었나 보다

우리는 흔히, 자주,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죽겠네, 증말", "죽겠다", "죽을 것 같아" 등 죽음이 합체된 것처럼 말을 한다.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을 과격하게 표현하는 것일테고, 느낌도 화악 와 닿는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닥치면 우리는 살고 싶어진다. 



생에 대한 관성과 가속도가 죽고 싶을 지경에서 구조해 내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우울. 통나무처럼 자극을 수용하고 감각이 둔화되고, 세상을 향해 던진 돌팔매가 파문을 일으키지 못 하고, 그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살맛나는 경험과 그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침체가 우울이다. 


신이시어! 나를 건져내어 주소서!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신앙은 허구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많다. 과학과 이성은 증명되고 되풀이할 수 없는 것들은 허구로 평가한다. 과학적 사고와 증명적 이성으로 익숙해진 세상에서 미숙하고, 불합리한 감성과 불완전한 존재적 나약감, 실존의 소실. 이런 것들에 대한 터치나 진지한 논의는 점차 무시되고 있다. 



관계의 거지줄에서 많은 실타래에 얽혀 있거나 평균 이하로 얽혀 있거나 언제나 우울은 원하지 않지만 찾아든다. 사람보다 기계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이 시대에 우울은 원시적인 춤사위로 물리칠 수 있는 가벼운 현상이 아니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굳이 지금 죽을 필요가 있을까

된장, 홍어, 사람. '나'. 공통점은 숙성에 있고, 세월의 장구함이다. 어차피 자궁에서 나와 세상의 차가운 공기를 접촉했을 때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숙명을 타고 났다. 생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특정하고 개별적이고 위대하거나 형편없는 행위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진리이자 사실인, 과학적 증명과 합리적 사고에 의하더라도 같은 결론에 이르는 죽음. 어차피 언젠가 죽을텐데, 굳이 시끄럽고, 충격적이며, 이런 식으로나마 존재의 인식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것인지, 참으로 못난 인생이다. 자살은 선택이지만, 나무랄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 그저 곁에 있다가 누군가가 급작스럽게 절대적으로 소멸된 사건이다. 



무엇이 허구이고, 현실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매트릭스인지, 오프라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세상은 혼돈이다. 하지만, 굳이 일찍 플러그를 뽑을 필요는 없다. 상실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홍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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