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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Dec 03. 2019

뭘모르는 젊은것들과 나이값 못하는 노인들

일상의 변론

부모가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들은 대부분 부정어이다. "그렇게 하면 안돼!", "때가 되면 알게 되!", "너도 자식 낳아서 길러봐!". 결코 그 말이 청취되는 순간에는 증거가 제시될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자녀들은 "아! 답답해", "그게 아니라니까", "엄마, 아빠는 잘 몰라, 됐어!" 등의 단절적인 부정어들이 많다. 부모에게 자녀들은 뭘 모르는 애들이고, 자녀에게 부모는 고루한 도덕선생님같은 존재이다.


젊음은 일방적이다!

젊음을 표상할 수 있는 표현들이 많겠지만, 젊음은 일방적이다. 목표지향적이다.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에 삶의 일방성이 있다. 진학, 취업 등 목표의 명확성과 세상의 공정하지 못 한 숱한 부조리에 대해 분개한다. 분노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젊음은 그렇게 진행한다. 부모, 기성, 노인들에 대해 구시대적이며 세상에 대한 인식이 과거의 시점에 얽매여 여전히 타성에 젖어 있는 그런 부류로 생각한다. 내 아버지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다른 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꼰대'로 치부한다.


노화는 회고적이다!


기성, 노화는 다분히 회고적이고 과거적이다. 그 의미는 젊은 시절의 선택과 낭비를 좀더 절약하고 순화했더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쭈글한 사고와 모습이 좀더 중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고, 젊음과 자녀에게 자신의 후회와 미련의 경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과 지혜는 자신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인에 대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존중'이다. 역사의 다리를 이어왔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이 우리에게 만족과 불만족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현존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 한뒤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걸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유불문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젊음은 가능성과 인수인계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고, 다분히 과거, 현재보다 발전된 사회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구원투수여야 한다. 기성, 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찬동한다. 기성, 노인들은 지혜와 관조, 포용, 지식과 경험의 전수,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한 이해와 깨달음을 젊음에게 교수해야 한다.


비록, 기성, 노인들인 코딩, 블록체인, 매끄러운 매체의 활용에는 어눌하더라도 세월 속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식을 젊음은 예의바르게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 젊음 중에도 낭비와 무례한 존재들이 있고, 기성, 노인들 중에도 권위와 강압을 내세우는 부류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그 부류의 전체적 이미지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늙음은 사리분별력이 고도화되고 도덕적 관념이 짙고 인생의 맥락을 깨달았기 때문에 삶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선사받은 시기이다. 그것들로 혈기왕성하지만 미숙한 젊은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인내와 신뢰도 함께 주어진다. 젊음은 일방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둘러보고 미래적으로 활용할 가치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나이를 무기로 해서 질서를 어기고 폐쇄적인 사고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인 후세나 젊은이들을 비난하기만 하는 매우 이기적인 노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뭇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새로운 지식과 문화적 경향에 기해 젊음이 구적인 문화와 교훈을 이유없이 배척하는 것 또한 꼴사나운 일이다. 개방적인 사유를 포기하고 퇴색한 지식과 경험을 응용할 줄 모르는 노인, 관용과 관대를 찾아볼 수 없는 노인, 사리분별력이 떨어지고 관조적으로 삶의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는 노인. 개인적으로 이런 노인들에 대해 품위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되먹지 못 한 젊음, 편향된 기호에 의해 일방진행만 하는 행동은 결코 신중하다고 할 수 없는 미숙함이다.


불만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어쩌면 불만이 누그러진 척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젊음과 노화는, 향후에도 아주 길고 긴 삐침이 될 듯 하다. 지적과 인정, 반성과 회오, 이해와 교류, 역사와 미래, 현재와 내일은 반목보다 화목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뭘모르는 어린 것들과 세상망쳐놓은 기성, 노인들이 대한민국에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세련된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박하다. 누가 나서야 할까. 보수? 진보? 아니다. 바로,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들로부터 계급장 떼고 시작해야 한다. 직류가 아닌 교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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