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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Oct 26. 2019

숙청의 공포

일상의 변론

네미 마을이 있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 바로 밑에 '디아나 모렌시스', 숲의 디아나라는 성스러운 숲과 성소가 있다. 이 성스러운 숲 속에는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하루종일 이 나무를 배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고 그는 습격을 대비해 조심스럽게 자신과 주위를 경계한다. 그는 사제이고 동시에 살인자다. 그 사람이 경계하는 것은 그를 죽이고 사제직을 대신 맡게 될 사람이다. 성소의 규칙이다. 후보는 사제를 죽여야만 사제직을 계승할 수 있다. 

제임스 조지 프레지어의 황금가지의 초반에 있는 이야기이다. 사제는 신의 뜻을 읽고 인간의 세상에 문제를 신과 소통하며 해결하는 존재로 추앙받고 온갖 귀한 대접을 받다가 그 후임에게 물려줄 때는 죽음을 당한다. 물론, 사제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해 기근, 질병, 가난, 가뭄, 홍수 등이 일어나면 그 죽음은 더 빨라진다. 대통령이 그 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면 탄핵당하고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사제는 자신의 과오나 역량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응답은 본래부터 들은 적이 없고, 신의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를 추대해 사제가, 주술사가, 왕이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현실로 현실화시키기 못하고 대중의 기대와 관심을 충족시키지 못 하게 되자, 죽임의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온갖 방법을 동원에 축제와 축문, 기도를 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죽을 때가 되면 무슨 짓이든 효험이 없는 법이다. 


지금 대통령은 트라우마에 젖어있다. 고민이 크다.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이 숙청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온갖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내적 통합을 위해서는 외부의 적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 법이다. 북한. 일본. 민족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거론함으로써 민족의 다각화된 관심을 단순화시켜 집정에 유리한 상황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중국, 미국은 문화적, 물리적으로 멀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보다 자극적인 소스인 북한, 일본을 외부의 적으로 끌어들였다. 


황금가지를 꺾는 사람이 기존의 사제를 죽이고, 새로운 사제가 된다는 법칙에 의해 사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가 누리던 존중과 추앙, 좋은 음식과 부드러운 옷가지의 혜택이 죽임으로써 중단되고, 자신의 존재가 소멸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규칙을 어기고 칼을 빼들고, 자신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후임 사제를 죽이려고 노심초사하게 된다. 


지금의 대통령은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황금가지를 꺾을 후임자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경제, 미래의 기술적 발전, 금리와 교육, 복지와 성장 등에는 집중할 수가 없다. 그저 황금가지를 스스로 꺾어서 자신을 죽이지 않을 후임에게 가지의 끝자락을 이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역시 황금가지를 꺾어서 그 사제직을 맡게 되었다. 숙청을 통해 정당성을 확립하려고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온갖 무리의 잡배들을 주위에 배치하게 되었고, 감탄고토하려니 이미지가 상할까봐 고민하다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스스로 원대한 계획을 발설하면 그 계획의 미실현과 실패로 계획의 무게에 짓눌려 자멸하는 법이다. 평등한 세상, 경제적으로 하등할 수 밖에 없는 부류에게 돈을 쏟아 부으면 삶과 사회 전체가 발전할 것이라고 발설하였으나, 그것은 허구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그것이 약효가 다되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초조해 졌다. 


황금가지를 꺾으려 드는 후보자, 후임자, 적대자가 나타날까 칼을 빼들고 잠도 못 이루면서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민족을 위한 발전적 사유는 소멸되었다. 과거로의 회귀, 그토록 비난하던 보수의 행적을 미화시켜 실현하려니 자신의 발설과 모순이다. 그리고, 이제는 힘도 빠져서 약발도 없다. 지금의 대통령이 느끼는 심경일 것이다. 직접 대화를 해 보지 못 해 실증할 수는 없다. 그저 그럴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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