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겸손과 겸양은 사람을 품격있게 만들고 인위적이지 않은 존경과 애정을 불러 일으킨다. 겸손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절대자에의 귀의
신의 존재, 부재에 대한 과학적 논쟁을 떠나 절대자, 절대적 존재, 창조주, 굴지의 현자들을 수긍하면 사람은 아무러해도 초월할 수 없는 수준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해질 수 있다. 지식과 앎에는 한계가 있고, 그 지평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은 지능과 시적 한계, 체력적 측면에서 한 인생에서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은 짧은 인생에서 시행착오없이 접근한다고 치더라도 불굴의 마스터들을 능가할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겸손은 자연현상이 된다.
After you!
겸손해지는, 겸손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은 상대방을 주격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나는'이 주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네가'가 주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먼저 듣고, 긍정하는 것이 수순이다. 당신을 꼬꾸러뜨린들 내 삶과 인생이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고 가능한한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버리면 겸손한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조금의 인내심을 발휘하면 된다.
지속적인 학습
전문분야, 취미, 운동, 요리, 맛의 구별 등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미지의 분야들이 많다. 반드시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 바른 길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발휘해 새로운 분야에 대해 투신하고자 하면, 그것이 일정한 습관처럼 익숙해지면 아직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의 자존심, 알량한 앎은 지극히 소량의 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들 앞에서 수다를 떨기에 신중해진다.
상대성 원리
180cm는 크다. 그런데, 181cm보다는 작다. 키 큰 사람들을 집합시키면 그 중에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생긴다. 자신이 누군가 보다 못 하다고 생각하면 겸손해진다(이런 겸손은 비굴, 아첨, 교언영색에 가깝다). 자신이 누군가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교만하고 거만해지고 싶어진다. 상대성 원리를 깨달으면 대부분 겸손해 진다. 1m의 막대기를 도끼로 자르지 않고, 짧게 만드는 방법은 그보다 긴 막대를 옆에 두기만 하면 된다.
자애
거울을 보면 어느 부위가 좀더 달랐으면 더 나은 미모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는한, 타고난 생김새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인상과 분위기는 변화될 수 있어도 이목구비의 기본틀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애가 나르시스적이지 않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관념에서 충만하다면 자신의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한 존중을 실천할 수 있다. 자애가 부족하면 과도한 열등감, 과도한 과시로 공허함을 은닉하느라 겸손할 수가 없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을 무시하지 않는 겸양이 생긴다.
일일삼성 오신
하루 세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지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을, 자신의 말과 행적을 주기적으로 반추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도 유사한 상황,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을 접하게 될 것이므로 어제, 오늘, 내가 행한 언행이 보다 세련되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묘책은 없었을까. 대부분의 겸손은 일단 자신을 둘러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타인에게서 단점을 찾고, 타인의 인간답지 않은 면모 때문에 힘들어 해 본들, 타인을 수정할 능력이 자기에게 있지 않는 한, 자기만 괴로울 뿐이다. 결론적으로 자기가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더라도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타고나기를 겸손한 그런 존재는 없다. 숱한 훈련과 담금질을 통해 겸손의 깊이는 더해진다. 겸손한 사람은 친구가 증가하고 적이 줄어든다. 삶이 충실해진다. 그리고, 겸손은 선택을 신중하게 한다. 단정하게 모은 두 손을 보이는 사람에게 험한 욕을 할 사람은 보지 못 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 절로 겸손해질줄로 알았다. 착각이었다. 여전히 상대의 속빈 강정같은 말을 끊고,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은 욕구와 불끈하는 다혈적인 승부욕이 솟구친다. 겸손은 길러지는 것이고, 관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 번 겸손했다고 해서 계속 겸손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