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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Nov 22. 2019

독자가 정해져 있는 글쓰기

일상의 변론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들이 있다. 전형적으로 작가, 칼럼리스트, 번역가 등등. 변호사도 글쓰기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변호, 변론 중에 말하기가 있기는 하지만, 실무상 말하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글로 거의 대부분의 재판이 처리된다. 글쓰기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독자가 다양하고 다수이기를 바란다. 그만큼 인세 등 수입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사의 글은 독자가 정해져 있다. 판사, 검사, 상대방, 의뢰인이다. 범위를 좁히면 진정한 독자는 판사이다.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글이어야 보수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의뢰인의 만족에 치중하다 보면 판사가 읽기에 힘든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변호사의 글은 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법률요건과 관련된 것들만이 농축되어 간결하고 일목요연해야 판사가 주장의 맥을 쉽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정해져 있는 글을 쓰게 되면, 사고의 흐름의 주체가 작성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독자중심으로 글을 써야 하고, 독자가 어느 부위에서 감동하여 주장을 사실로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연애편지를 잘 써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고, 잘 써진 연애편지는 상대방의 감정적 감흥과 흥분, 기호와 선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글이다. 결재서류, 기획안의 목적달성은 독자인 상사, 결재권자의 심경을 긍정적으로 건드리는 쓰기에 달려 있다.


이즈음되면 결론이 하나 생긴다. 독자가 특정된 글을 쓰는 방법은, 작자의 주관에만 의존해서 작성되어서는 안되고, 독자를 안중에서 떠나보내면 안된다. 독자가 읽어내기에 수월하고 쉴틈을 적절하게 제공하고, 머리에 남는 것이 있는 글이어야 한다. 남는 것이란 독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판사는 사건에 대한 판결을 위한 요소를 필요로 한다. 여인은 자신이 그리던 남성상이 지닌 생각, 취향, 멋을 필요로 한다. 상사는 이익이 될만한 요소를 필요로 한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겨냥한 글을 쓴다면 최대한 중성적이고 아름다운 결말과 유익한 팁이 담겨져야 할 것이지만, 특정한 독자를 겨냥한 글을 쓴다면 철저하게 독자의, 독자에 의한, 독자를 위한 글을 쓰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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