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나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2 기억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향후 글을 쓰고자 한다. 직업이 있거나 직업이 없거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던지,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거나 사회에서 의도적, 비의도적 무시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나'를 규정짓는 것은 기억이다. 일단 '나'는 자신에 대한 경험과 고통, 즐거움, 감각, 사유를 통해 축적된, 정확하게는 뇌에 저장된 정보에 의해 '나'가 된다.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부쳐진 이름 아래 '나'의 개인적인 기억과 타인이 기억해 주는 '나'에 대한 외관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을 바라보게 된다. 그 주인공은 여전히 '그'인데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서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우연히 다시 머리를 부딪히는 사건을 통해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을 겪은 후 갑자기 기억을 되찾는 순간 '나'가 된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정의가 회복된다. 재벌집 2세였거나 능력있는 자였음을 정의하게 된다. 영화 '럭키'를 보면 유해진이 기억을 찾으면서 '킬러'라는 정의를 되찾는다. 물론, 기억이 없는 동안 순화되어 킬러적 본능과 스킬을 긍정적 측면으로 사용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어떻게 동일성을 유지하는가. 체중이 달라지고 먹은 것이 달라지고 경험이 달라져서 생각과 감정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동일한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나'가 가진 기억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일, 참치캔이 고추참치가 된다면 동일한 참치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도 사람은 '나'가 여전히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0년 후 '나'에 대해서도 동일할 것이고, 같은 존재라고 예측한다.


그 이유는 기억의 존재와 연속성 때문이다. '나'가 가지고 보유하고 유지하면 망실을 최소화하면서 지켜 온 기억 때문에 '나'는 '나'일수 있는 법이다.


만약, 기억이 망실된다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가졌다가 까먹었다가 새로운 기억으로 새로운 존재로 인식했다가 과거의 기억으로 과거로 회귀했다가 기억이 제 멋대로 작용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가.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이다. 기억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몸을 도화지 삼아 메세지를 문신으로 새겨 놓는다. 그래도 기억은 온전하지 못 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빈 공간 속을 헤매며 인생을 되풀이하게 된다. 문신을 아무리 새겨도 '나'를 정의하지 못 한다.


새날이 밝아도, 새해가 밝아도 '나'는 변함이 없다. 수치적으로 나이가 증가할 뿐이다. 하지만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기억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누구도 공유할 수 없는 '나'에 대한 기억에 기초한다. 때문에 기억을 유지, 보존하는 작업은 '나'를 정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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