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유전자, DNA,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정밀한 현미경으로 보면 볼 수 있다. 하지만, 본래 가진 인간의 시각적 능력으로는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다. 우리는 보이는 적, 경쟁자 등에 대하여는 상당한 대비를 한다. 피아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존과 이익, 자기의 보전과 상대의 소멸을 통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승리와 패배는 결정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자체 생존능력이 없다. 숙주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숙주와 공생이 아닌 기생이기 때문에 숙주는 반드시 죽을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바이러스는 윤리적 도덕감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숙주를 찾고, 숙주의 개체를 늘려야 하는 본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를 선과 악으로 구별할 수는 없다.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되면 죽는 것이고, 살 것이면 어떻게든 살게 되어 있다. 자연선택에 의해 적응하면 생존하고, 그렇지 못 하면 사멸한다. 잔인하다거나 현명하다거나 그러한 평가를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도 중국인들이 싫다. 중국인들의 저질스러운 위생관념과 이해하기 힘든 몬도가네같은 식습관,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은 숨기고, 좋은 일만 드러내려는 대륙기질(?)같은 그런 인간성이 싫다. 하지만, 중국은 대국이고, 우리는 소국이다. 자고로 작은 것은 큰 것을 섬겨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유럽, 중동,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이 중국인만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 전부를 차별대우한다. 부당함을 크게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저네들은 질병과 바이러스로 영역을 넓혀 놓고서 중국만이 아닌 나머지 피해국인 아시아인들마저 차별적 취급을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세계는 1일 생활권으로 묶여질 만큼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발전되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창궐하니 세상은 지도의 구분경계선대로 구분되어 간다. 그렇다. 인간은 일부 집단에서는 이타적일 수 있지만, 인류 전체를 따지고 보면 이기적이다. 'WE ARE THE WORLD". 웃긴 노랫말이다. 저 노랫말 중간에 'EACH'를 적어 넣어야 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 예배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목사님이 마스크 쓰고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했다.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기침을 했다. 설교에 집중이 끊겼다. 내심으로 기침나면 집에서 인터넷 예배를 드릴 것이지 왜 굳이 교회당으로 나온 걸까. 상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역사적으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구원을 구하다가 전염이 더 빨리, 더 많이 전파되었다. 인간은 해답을 모를 때 상당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한다. 인간이 과학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종교를 져버리지 못 하는 이유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기침하는 인간을 기피하게 된다. 사스, 메르스 등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멀리 했다. 수족구가 유행할 때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수족구에 걸린 아이와의 격리를 가르친다. 같이 죽을 이유는 없으니까 당연한 처사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은 결국 자기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인류애, 공동체의 발전을 표어로 내걸고 해동하는 척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이기주의에 빠지게 된다.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계가 소란스럽다. 우리는 이런 시기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전에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이기주의(혐오, 마스크, 세정제의 매점매석 등)와 인간에 대한 혐오(국경폐쇄 등)를 발견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예배당에서 기침하는 그 아줌마가 싫었다. 우리는 이기적이다. 결코 타인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고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