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불륜이 더 늘어났을까. 통계적 수치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다만, 형법적 죄의식과 두려움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륜이 들통나면 민사적 손해배상, 즉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의 문제는 남는다. 상간남과 상간녀가 배상을 하더라도 불륜을 저지른 남녀간에 구상의 문제는 남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같은 별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고,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서로의 부족함을 충족시켜 나아가는 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섹스는 기본적으로 번식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번식 이외의 충동과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섹스를 한다. 죄책감과 강박감이 밀려들 것이지만, 성기의 맞대결에 잠시 도덕적 윤리감 따위는 접어둔다. 결혼도 사실은 문화적 관습이고 제도일 따름이다. 누구나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상대와 그에 승낙하는 상대간에 교접을 할 수 있다.
마누라나 남편이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즐거움과 쾌감, 그리고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야릇함과 부담감이 교차하면서 교접의 쾌감은 벗어날 수 없는 욕구충족이다. 많은 부정행위를 접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사고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한 번 결혼하면 다른 이성과 교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연적 법칙이 아닌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자 관습이고 종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하면 교접해야 한다는 순차적인 것은 법칙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간의 법칙이다.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없더라도 단순한 호감과 성적 욕구로 인해 사랑에 대한 정의와 확신없이도 교접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번식 이외에 섹스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섹스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까. 자식 새끼와 마누라를 버리고 자기 만족과 상대의 친절함에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하는 것이 행복일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수익의 문제로 접근할 수 없고, 인간적인, 추상적이지만 다소 근대적인 교리에 의해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전의 배우자를 버리고 섹스의 교감이 극도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 상대를 선택해서 재혼하거나 동거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재혼부부가 단기간에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성적 쾌감을 주고 받더라도 현실이라는 삶의 문제 앞에서 성적 쾌감은 초라해 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