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부하 변호사(어쏘 변호사라고 함)도 거느려 보고, 10여명 이상의 직원들을 거느려 본 적이 있지만, 오래 일했다고 해서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험칙을 얻게 되었다.
여러 부하직원들(미안한 심정이지만 동료라고는 해도, 내심으로는 사실 더 애착이 가는 변호사, 직원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에게 A를 지시하면 그 결과물을 위와 같이 가져온다.
A- : 인내를 가지고 더 가르치고 업무수행능력이 향상되도록 기다리거나 업무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해고해야 한다.
A : 애매한 직원(동료)인데 개인적으로 그의 성품이 좋은 경우, 그냥 함께 일하는 쪽을 선택해 왔다.
A+ : 생각지도 못 했던 아이디어를 덧붙여 오는 그는 아낄 수 밖에 없고, 예우를 갖추어 주어야 하고 정해진 급여이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해 왔다.
체계적이고 질서있게 업무지시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업무의 속성상 의뢰인이 연락하게 되면 업무일정이 변동될 수 밖에 없다. 의뢰인이 구속이라도 된다면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직원(동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정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직원은 조금 더 연구하고, 생각하고, 더 해 보려고 하고, 어느 직원은 "딱 그만큼만", 어느 직원은 지시한 것도 제대로 하지 못 한다면, 상사로서 사장으로서 누구를 예우하고 누구를 꾸짖게 될까는 설명이 필요없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새내기 변호사 시절에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에 속했다고 자평한다.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힘들어도 무조건 더 배우고 경험해야 후일 그 모든 것들이 다른 변호사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될 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봉급쟁이 변호사였을 때는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어도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거의 매일 야근이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 했다. 업무처리에 능숙하지 못 해서일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지급하는 봉급의 2.5배 내지 3배의 매출을 올려줘야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 그를 알아주는 사람
지금 젊은 세대들 중에 소확행이니 워라벨이니 하면서 봉급을 더 준다고 해도 일을 더 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A+"의 결과를 내기 위해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물론 사무실 내에도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하지만,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은 눈에 띄게 되어 있고,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후행하게 되어 있다. 만약, 그러한 노력을 인식하지 못 하는 상사는 그 노력을 귀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인복이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내가 변호사생활을 할 때는 야근이 보편화되어 있었고, 대형로펌은 야근시간이 더욱 심각하게 길었다.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동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자, 능동적으로 바뀌었고 야근이 덜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관리감독받는 것을 반기지 않는 성품이라 '조금 더' 하니 선배들이 인정해 주었고, 업무처리에 있어서 소소한 자유도 얻게 되었다. 회사의 일정대로 일처리를 주로 하되, 나의 일정을 반영해 처리해서 보고하면 되는 식의 자유말이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조금 더' 하니 승소율이 좋았다. 그 당시에는 봉급쟁이여서 관리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고, 사건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봉급쟁이 변호사생활을 무척 짧게 마감하고, 무턱대로 개업을 했다. 로펌 내에서 별산제 구성원 변호사가 된 것이다. 일반인들은 로펌의 변호사 수에 무척 관심있어 하는데, 결국 사건처리는 별산제로 구성된 개별 변호사가 처리할 뿐이다. 따라서, 변호사 수가 많은 로펌을 선호하는 것은 의미가 그다지 크지 않다.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속해 있던 로펌도 별산제였다. 후일 알게 된 사실이다.
아무튼 운이 좋게 동기들에 비해 일찍이 어쏘변호사를 둘 정도가 되었고, 직원도 많이 늘어났다. 10명이 넘은 적도 있었으나, 몸이 아파 쓰러지고 난후 일을 줄여야 했고, 변호사가 과다배출되어 사건유치경쟁도 치열하여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A형의 인간으로 그치고 싶을 때가 지금도 수시적이다. 하지만, A+가 되기 위해서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숙제는 암기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지금 젊은 세대들이 갈 곳이 없기도 하지만, 너무 이른 포기와 '조금 더 해 보려는' 의지가 빈곤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그를 알아봐 주는 인식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른들이 젊은 세대이던 시절의 기억과 회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기 때문이고,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를 애써 부정하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도 어른들의 젊은 시절에 대해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조금 더 해 보려는 사람'과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수적으로 늘어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