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ny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평변호사 Jan 07. 2021

예외적 지도자 1명

일상의 변론

칠레에서 1973. 9. 11. 육군, 해군, 공군이 합의 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칠레 군사정부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최고 지도자로 삼았다. 각 부의 수장들이 번갈아 가며 최고 지도자를 하기로 하였으나, 피노체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첩보기관을 설립해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색출해서 살육했다. 이전 정권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쿠데타 이전의 정권은 물가동결, 노동자 임금 대폭 인상, 정부지출 극대화, 국가적자의 누적, 대농장 등 기존 자본의 몰수 등을 실행했었다. 피노체트는 과거 사회주의식 경제정책을 뒤엎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적극 수용했다. 국가재정을 줄이고, 관세를 낮추고 오로지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치자 물가가 안정되고 해외투자가 증가하고 개인의 소비도 증대되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좌익말살 조치의 비인격적 행위로 인해, 독재로 인해 망명을 떠났다. 


독일의 경우 1933.경 나찌의 세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화가가 되어 그림이나 그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신내림을 받았는지 히틀러는 민중을 규합하는 능력을 총체적으로 발휘했고, 세계 제2차 대전을 주도했다. 그리고, 인종말살정책을 실시했는데 여타 다른 국가에 비하면 그나마 신사적(?) 만행이었다고 해야할지, 강제수용소에 가둔 유대인들을 가스로 편안하게(?)대량학살했다. 세계에서 발전이 뒤늦은 인도네시아, 칠레같은 경우에는 반대세력의 축출이 매우 거칠었다(칼로 눈을 후벼파거나 강간을 하거나 시선 앞에서 마구 살해했다). 히틀러는 자결하였으나 독일은 그후 전쟁배상금문제와 국내 자체적인 문제로 한동안 궁핍하게 살아야 했다. 


우리나라 남쪽만 보더라도 박정희가 17년간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누렸다. 해외 차관을 이용해 고속도로를 깔고 중공업, 경공업을 발전시키고, 민주적 선거형식으로 대통령재임에 성공하기는 하였으나, 반공세력의 축출, 군사적 독재에 대한 민중의 저항에 대한 폭력적 대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 부패지수의 상승 등 경제적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문맹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군부의 비민주적 지배는 다른 후진국과 견줄만 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나 사정과 IMF, 서브프라임, 국정농단, 다수의 패거리 정치 등으로 정치적 갈등과 타협의 부재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북쪽은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해방 이후 공산당이 정확히는 김씨 씨족집단이 온갖 호사를 누리며 국민들을 수준낮은 평등의 테두리에 가두리 양식하고 있는데다 거지근성을 버리지 못 하고, 지구적 관점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핵의 부정적 효과를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구걸에 이용하고 있다. 3권분립의 측면에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애매한 점은 북한의 경우 예외적 지도자 1명을 김일성으로 보아야 할지, 암살을 서슴치 않는 김정은으로 보아야 할지인데, 핏줄이 같으니 둘을 묶어서 예외적 지도자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어느 국가에나 역사적으로 예외적 지도자 1명을 선별해 낼 수 있다. 그가 획기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악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최고지도자의 통치철학의 현실화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개입하고 마찰과 갈등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예외적 지도자라 하더라도 어느 구석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진리이다. 역사는 현실에 처한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교훈을 새겨 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끌, 빚투에 대한 소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