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는 비스켓을 생각해 본다. 비스켓의 존재이유는 아이스크림의 즐거움이 무뎌질 때, 한 입 베어 먹음으로써 다시 아이스크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무뎌진 미각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본래 삶이란 쾌락과 고통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그런 시공간이다. 어느 한 쪽만 느끼거나 당하면 무뎌지거나 무너지므로 세상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만 길고 슬프게 느끼고 겪는 이유가 무엇일까. 근본적인 고통 때문에 힘겨웠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고통은 가중적이다. 생업의 터전을 잃어 버리고 세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신세, 빚의 무게의 짓눌림도 힘겨운데 사람이 그 고통의 무게를 더한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데, 자신만 고통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이 고통은 언제 끝나고 쾌락으로 변할까.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지 못 하면 고통스럽다. 그럴 때는 더 간절히 원하고 구하는 길이 최선이다. 원하고 구하기를 중단하면 영원히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 힘들고 고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이다. 과거 쾌락의 달콤함도 잠시 내려놓고, 누리던 것들에 대한 향수도 내려놓고, 마치 태어날 때의 순간처럼 아무 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단지 살아 숨쉬고 생각하는 육체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자각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고 힘들어 한다는 것은 아직 고통의 꼭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다.
눈물이 나면 참지 말아야 하고, 욕하고 싶으면 내뱉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들을 참느라 더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모두가 고통과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다. 이 시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 시기의 끝에 고통은 가시고 쾌락이 올 것인지 아무런 답도 없다.
고통은 변화를 준다. 변화는 고통을 줄이고 즐거움으로 다시 순환의 파도를 탄다. 고통의 지평 위에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되내여야 한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의미없는 것이 아니며 회복과 극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을 어제의 자신을 후회해 본들 변화의 원동력이 되지 않는다. 흘린 눈물만큼 변할 것이며 지루한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날 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