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1]"Multilinguist가 되어라"

by 윤소평변호사

태평씨는 루틴하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반무의식적 상태에서 출근을 준비한다. 쉬하고 똥싸고 면도하고 세수하고 양복을 입는 단계까지 사고작용은 없다. 가볍게 주워먹고 먼지 뽀얀 구두를 구겨 신으면서 아이들에게 "아빠 출근한다"라고 한다.


태평씨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이 매우 활달하여 아들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은 배웅하러 나왔지만, 딸 녀석은 어딘가 숨어서 나오질 않는다. "얘는 어디갔어?" , 아들이 "걔는 잼민이야!"라고 말한다. 태평씨는 "잼민이가 뭐야?"라고 아들에게 물어보는데, 결론적으로 "개구쟁이"로 이해했다.


태평씨는 출근길 내내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 하는 경우가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점점 잦아지고 있다. 표준어가 있는데, 어른이나 아이나, 청소년이나 표준어라는 말 자체가 오히려 생소하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담아내고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의해 제한된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의미와 같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인간의 언어구사 능력은 좌뇌, 특히 발화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과 이해를 하는데 작용하는 베르니케 영역에 달려 있다.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위 영역들이 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씨의 아이들은 큰 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작은 틀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태평씨가 아이들의 언어를 배우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표준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하지 않는 한,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하게 된다.


A언어를 사용할 때, B언어를 위한 뇌의 작용은 억제되거나 절제된다. 동일한 사람이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그 중 어느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에는 사고방식이 그 언어체계에 들어맞게 되고, 다른 언어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은 억제된다.


라떼 VS 잼민이!

대화는 사회적 유대관계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면 이해가 결핍되거나 불완전하게 되어 피드백되는 언어도 초점에서 멀어지고 끈끈한 공감이 형성되기 어렵다. 아이들이 "잼민이"라고 할 때 느끼는 감정과 태평씨가 "개구쟁이"라고 할 때 느낌이 상호 완전히 공유되지 못한다.


태평씨는 X세대, 아이들은 Z세대에 속한다. 언어에는 사고체계와 방식이 담겨져 있고, 행동도 뒤따르게 된다. 태평씨가 마흔 중반으로 '꼰대'라고 불리우는지 자신은 모른다. 태평씨는 익숙한 언어를 구사하고 행동하지만 다른 세대에게는 '끈끈한 유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세대간의 격차는 구사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에 따라 사고방식과 체계의 차이에서 점차 증가한다. 태평씨가 보고 배운 언어와 세상은 후세대가 보고 배우고 있는 언어와 세상과 다르다. 태평씨가 "너네는 살기 좋은거야,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는 순간, 다른 사람과의 '끈끈한 유대'는 물건너 간다.


정치와 종교!

태평씨는 퇴근길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잼민이"에 대한 고민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고, 격없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수다는 격식이 없다는 점에서 격식을 갖춘 언어와 차이가 있다. 태평씨도 친구들도 욕지거리하면서 술에 취해간다. 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마치 아이들이 "잼민이"를 사용하는 사람과 더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는 것처럼.


수다가 다양한 화두를 다루면서 규칙없이 전개되다 보면 정치분야, 종교분야로 맥없이 빠져들 때, 태평씨는 방금전 구사하던 언어와 다른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인간에게는 입맛에 맞는 편향이 있기 마련이고, 태평씨도 자기만의 편향이 있기 때문에 진보적 언어와 보수적 언어, 유물론적 언어와 유신론적 언어 중 선택되어 있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욕지거리하면서 껄껄대던 술판은 A-C-B 사이드로 구분된다. 사고가 언어를 만들고, 언어가 사고를 만드는 되먹임 때문에 수다를 통해 어렵게 찾은 공통점이 분화되어 버린다. 결말도 없는 수다분야에서 태평씨는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하고, 친구들은 그네들만의 언어를 구사한다. 이 순간은 친구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애쓰기보다 오로지 반박을 위해 태평씨의 사고가 제한되고, 그에 따라 선택된 언어가 발화된다. 누군가 "야~야!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돈도 안되는 얘기는 그만하고~~자! 건배!"라고 조정을 하면 수다가 마쳐진다.


태평씨는 외로움을 느낀다. 아이들에게도, 친구들간에도, 그리고, 선후배간에도 보이지 않는 분리와 분열이 존재함을 내심 알고는 있었지만 수시로 이것을 확인하는 기분이란 그렇다. 태평씨가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언어가 주는 감정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밖에 없다. 태평씨는 말한다. "Multilinguist가 되어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에 대한 사적 대처] 돌, 나무,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