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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대한 사적 대처] 돌, 나무, 정신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인간이 사냥을 시작한 것은 약 200만년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사냥현장을 재현해 보자. 사냥꾼들의 수는 일단 사냥감의 특성, 즉, 크기, 빠르기 등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코끼리나 기린을 사냥한다면 많은 사냥꾼들이 모였어야 할 것이고, 토끼를 잡는다면 몇 명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사냥꾼들의 손에는 돌이 묶인 나무작대기, 날카로운 동물뼈, 날카로운 돌맹이가 들려 있었을 것이고, 그들 나름의 포메이션에 따라 사냥감의 반경을 좁히고, 사냥감의 목숨줄이 끊어질 때까지 공격했을 것이다. 만약, 사냥감이 공격에도 불구하고 도주한다면 사냥꾼들은 끝까지 쫓았을 것이다. 상처입은 사냥감은 물가가 있어도 물을 마실 수 없었을 것이고, 숨을 돌리려 해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사냥꾼들이 그 순간에 재차 공격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얻는다.


의문은 사냥꾼은 어떻게 쉬지 않고 사냥감을 추격할 수 있었을까라는 것이다. 사냥꾼들은 각자 물주머니, 먹을거리를 허리나 어깨에 매달고 있었을 것이고, 때에 따라 이를 보충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서로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였을 것이다. 신체적 보충과 정신적 보강이 사냥감을 이길 수 있었던 비법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냥꾼들이 사냥감에 몰두한 나머지 사자와 같은 맹수들로부터 누구 하나가 먹힌다면 이또한 사냥에 실패할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였을 것이다. 먹힌 사냥꾼이 사냥기술이 가장 뛰어난 인간이었다면 큰일이지 않았을까.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소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용기가 되어야 주어야 한다. 희망이 되어 주어야 한다. 공격당해 상처를 입은 사냥감도 물을 마시지 못 하고 굶주린 채 계속 질주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사냥꾼들이 물을, 먹을 것을 생략한다고 하더라도 사냥에 성공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였기 때문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체력보다 강하다. 인간의 정신력은 가로막힌 벽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기도 하다. 현재 고난과 가난은 결코 부술 수 없는 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이 서로 위로하면 인간의 정신은 고난과 가난의 벽 너머에 있는 것을 뚫어지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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