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27]"사랑할 수 있을까"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레위기 19장 18절)

;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복음 5장 46절)

; 용서해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누가복음 6장 37절~38절)

;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데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이슬람교 무함마드 '하디스' 언행록)

;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기키 마라(기소불욕 물시어인, 공자의 논어)


우리가 이웃과 적과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고 변화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보아서 알고 있다. 무려 태초부터, 기원전 수백년전부터, 기원후부터 현재에도 위와 같은 가르침과 진리는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자 깨달음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설파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우리를 일깨워 준 위대한 신들과 성인들의 가르침이 탄생하고 존재하며 전래되어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아는 것은 아는 것일 뿐,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으로 살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지상에 내려와, 평생을 학문을 닦아서 무지한 우리에게 쉽게 설명된 가르침을 너무 쉽게 알아서 그냥 지식 중 일부라고 여기는 것일까. 그래서, 진리와 가르침의 실천 따위에는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알지만 그렇게 살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이해타산때문일까. 아니면 내심 타인을 신뢰할 마음이란 전혀 없는 것일까. 배움은 배움으로 그치고, 행동과 실천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일까.


태평씨는 살아보니 명쾌하고 명백한 가르침이 얼마나 쉽게 우리에게 공명을 일으키는지 알지만 스스로 그렇게 살아오지 못 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나, 가족, 우호적인 타인만이 공동체이고, 그 범위 밖에 있는 타인은 무관계하거나 결코 내가 먼저 손해볼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경계의 대상인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하고 피곤하다. 피로가 누적되어 자기만의 공동체도 유지하기가 가끔은 번거롭고 귀찮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


태평씨는 궁금하다. '우리가 과연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더라도 내 방식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지당한데, 정작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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