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인간은 본능의 역사를 통해, 진화를 통해 경험적 지식의 구전과 실사를 통해 작전, 합의, 계획 등을 서로 논의할 수 있다. 보다 세련되게 말하자면 사회적 합의,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생각하고 말로써 경험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후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빨간불에 정지하는 것, 보도블럭을 걷는 것, 빌린 돈을 갚는 것, 돈으로 음식을 사서 먹는 것 등 크고 작은 모든 행위들이 계약과 법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다. 보도블럭을 걷는 것은 국가의 토지 위를 세금을 내고 걷는 행정법상의 합의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유의미한 행동 중 어느 하나도 계약, 합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어느 사냥꾼에게 잘 길들여진 사냥개 두 마리가 있다. 사냥꾼이 토끼를 잡고자 마음먹고 토끼를 물색하는데, 두 마리의 사냥개를 산과 들에 풀어 놓았다. 사냥개들은 토끼의 냄새를 추적하고 얼마뒤 토끼를 발견한다. 두 마리의 사냥개가 토끼를 쫓기 시작한다. 한 마리는 직선으로 한 마리는 측면으로 내달린다. 한 마리가 토끼를 동료 사냥개에게 몰아주고 동료 사냥개가 근접한 토끼의 앞을 가로막는다. 간격이 좁혀진 토끼는 사냥꾼의 손에 붙들린다.
두 마리의 사냥개 사이에 "야! 나는 토끼를 쫓을테니 너는 퇴로를 막아!", "그래, 알았어!"라는 계약, 계획, 합의는 없었다. 쫓아야 하는 사냥개와 퇴로를 막는 사냥개는 어떤 사냥개인지에 대해 규정된 법도 없었다. 사냥꾼의 훈련에 의해 체득된 행동패턴을 실제 사냥시에 반복하였을 뿐이다.
사냥개들은 특정 순간 토끼를 향한 사냥본능을 발휘한 것이고 이것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토끼 사냥에 성공해서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조건반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마리의 사냥개 간에 역할분담과 토끼몰이에 대한 계획은 결코 있지도 않았고 단지 사냥개들이 주인의 보상에 대한 기대에 의해 달음박질하였을 뿐이다. 사실 사냥개가 주인이 주는 음식을 욕망하지 않았다면 사냥터에서 잡은 토끼를 잡아먹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사냥개는 주인의 칭찬과 보상에 대한 욕망에 의해 우연히 식탐을 억제하고 토끼를 순순히 주인에게 내어준다. 용왕님의 고질병 치료에 묘약인 토끼간을 맛보는 기회를 주인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
인간의 개별적 행동이 우연히 일치적 결과를 내는데 상호 기능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인간의 행위의 결과는 합의, 계약, 법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너는 네 할 일을 해!", "나는 내 할 일을 할테니!"와 같은 합의가 현실화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일치된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모였고 결과 그 목적한 바대로 일이 결론났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구성원들간의 합의, 계약, 법이 개입되어 있다. 때로는 법이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의 과정과 결과는 불법이거나 최소한 부도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필드에서 각자 뛰었는데, 결과가 서로 목적한 바대로 되었다고 하면 이는 확률적으로 지극히 낮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결과이다. 구성원들은 '우연'에 호소를 하겠지만, 결코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인간 행위의 결과물이 두 마리 사냥개의 결과물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너는 네 할 일을 알아서 해! 다만, 나한테 피해만 오지 않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