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의 짐"을 거부하는데 중세 이탈리아의 백성들(개인해석 : 그 중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부르지 않아도 지체없이 "나는 준비되었소"라고 외치니 연옥에서 영혼의 씻김을 기다리는 13세기 시인 소르델로가 단테에게 읊조리는 구절이 나온다.
"공동의 짐"이란 공직을 의미한다. 확대해석해 보자면, 세력, 지위, 권력, 부와 명예, 세속적 성공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당시 종교적, 정치적, 대외적으로 분열과 불안의 시기였기 때문에 "공동의 짐"을 짊어지고 구성원들을 올바르게, 최소한 덜 힘들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 공직자, 성직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정작 하늘이 내린 사람은 커녕 올바르게 준비되고, 국민들이 추앙하는 사람은 공동의 짐을 짊어지는 것에 신중한 나머지 세상에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고, 부족한 인간들이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준비된 자(국민을 섬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하나님을 올바로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자)로 스스로 내세우며 공동의 짐의 무게는 생각하지도 않고 일종의 사기꾼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로마의 영광은 퇴색한 이탈리아의 삶은 행복하거나 즐거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누가 원하지도 부르지도 않았을 뿐더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와 면밀한 검토에 의해 공동의 짊을 지고 이 사회를 이끌어갈 사람에 대해 진지한 고민없이 주관적 개인적 감성과 기호에 의해 진정한 봉사자를 추대하지 못 하고 있다. 범죄자와 모사자, 그리고, 위선자, 기망당한 인간에게 지지받으나 하나님께 부끄러운 자들이 세상에 나와 설쳐대고 있으니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 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곤할 뿐이다.
누가, 어느 누가 자신이 준비되었다고 교만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하루에도 변덕스러운 인격의 흠결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면서 자신이 마치 세상의 부조리를, 물질적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노라 서슴없이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준비된 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의해 현혹될 뿐 아니라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속는 셈치고 속는다. 과연 우리는 속아서 이 모양일까. 속고 싶어서일까.
사기, 거짓, 배신,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외면은, 그러한 삶을 산 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항문부터 혓바닥까지 둘로 쪼개져서 먹을 것이 먹는 순간 똥이 되어 버리는 고통을 겪게 된다. 단테는 그렇게 노래했다.
나는 노력할 뿐이고, 준비할 뿐이다. 비록 그것이 나의 바램과 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겸허하게 결과를 수용하고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까지 그렇게 살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삶과 죽음과 그 후에 일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공동의 짐을 짊어질 수는 없는가.
세상에는 항문부터 혓바닥까지 두 갈래로 잘려서 고통받을 미래의 경험을 맞이할 자들이 준비된 자라고 기만하는 사건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