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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un 29. 2016

군인의 방귀냄새

윤소평변호사

1997. 어색해진 짧은 머리로 춘천 102보충대에서 12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를 했다. 당시 훈련소에서는 '수양록'이라는 노트를 훈련병들에게 한부씩 지급했다. 일기까지 강제로 쓰도록 하는 걸 보니 역시 군대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날 그날 있었던 훈련과 기억나는 일들을 기록했다. 


지금 군대는 조교들이 훈련병들에게 욕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조교들이 욕을 잘 했다. 그야말로 입에 착 달라붙은 욕을 듣고 그 욕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서운 생각까지 들게 하는 욕도 있었다. 


획일적으로 전투에 필요한 인력을 양산해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잘할 필요는 없지만 못 해서는 안된다. 군이 요구하는 수준만 하면 된다. 


수양록에 조교가 행한 욕을 적을수는 없었다. 1주차때 내심에 있던 생각들을 수양록에 기록했더니 중대장이 수거해 가서 관심사병이 있는지 검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수양록에 문제가 될만한 내심을 적지 못 했다.  


어느날 중대장에게 불려가 1:1 면담을 받았다. 수양록에 적은 내용때문이었다. 


~~~군대라는 곳이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같은 옷, 같은 음식을 먹고, 각자의 개성을 말살까지는 아니어도 몰각시키고, 같은 행동을 하게 하고, 방귀냄새까지 같은 획일적인 사회가 군대라는 생각이 든다.~~~


대강 이런 내용을 기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양록을 검사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내심에 있던 생각을 기록했을 뿐인데, 중대장과 1:1 면담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초래할 줄은 몰랐다. 


방귀냄새까지 같다는 내용때문인가. 중대장실로 가는 내내 무엇때문에 면담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게 문제라면 진술을 번복할 용의도 있었다.


중대장으로부터 군대의 존재의의와 군인의 가치에 대해 십수분간 설명을 듣고, 사회에서는 깨어있는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군대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등의 조언도 들었다. 군대에 대한 생각을 전환해 보라는 것이 처방이었다. 


나라지키는 영광을 얻었고, 부모형제가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애써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훈련소 생활에 익숙해 졌고, 서먹했던 동기들과도 전우애가 생기면서 나름 군대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방귀냄새까지 똑같다고 느껴졌던 1주차때와 달리 사실 방귀냄새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적응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처한 환경 속에서 그 환경을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이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념이든, 포기든, 극복이든 때를 달리 할뿐, 환경에 대한 생각은 언젠가는 달라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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