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집사람이 회사일로 늦게 귀가하는 날, 아이들과 전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8세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호감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는 한결같은 태도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4세 딸은 본래 감정기복이 심한 성격인데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지극히 편향적이어서 엄마가 함께 하는지 여부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호감도가 달라진다.


4세 딸은 아버지인 나하고 있을 때는 신체적 근접거리에서 여러 가지 요구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유감없이 표현한다. 돌변하는 태도에 의아하기도 하지만 살갑게 구는 딸의 제스쳐들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엄마가 귀가하는 순간부터는 나의 존재가 쥐구멍만큼 축소되어 버린다.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호불호를 유감없이 표현하면서 방금전까지 기울인 나의 시간과 정성의 대가가 변심이라는 사실에 허탈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내가 딸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변심과 냉대에 대해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어떤 관계든 같은 양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는 없다. 분명 어느 한 쪽이 상대보다 더 많은 양의 사랑을 제공하게 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상대를 늘 관찰하고, 상대가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참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자신이 보내는 사랑보다 적은 양의 사랑이라도 받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 때문이다.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헤게모니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분명 더 많이, 더 자주 상처를 받게 된다. 삶의 주도권과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을 때보다는 상대에게 있을 때가 더 많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보상과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처받을 일이 적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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