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식으로 끝났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남자가 지인들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어?"라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한다. 사람들은 관계의 시작에 대해 궁금증 이상의 과장된 관심을 보인다.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어떤 계기와 상황에서 어떤 말로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였는지, 누가 먼저 교제를 시작하자는 의사표시를 하였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관계의 시작방식에 제한되지 않은 많은 궁금증들이 포함되어 있다.
왜 헤어졌대?
사람들이 공통된 의문을 품지만 당사자에 대한 질문의 권리를 갖지 못 하고, 뒷담화를 하듯 제3자에게 질문하게 되는 것이 관계의 끝이다. 관계의 시작에 대해서는 발언권과 질문권을 부여받지 않은 상황에서 신문을 해도 무례하지 않지만, 관계의 끝에 대해서는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더라도 대면해서 질문하는 것이 불편하다.
시작에 대한 소식은 당사자로부터 직접 전해 들을 가능성이 높지만, 끝에 대한 소식은 제3자로부터 전해 들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이들이 시작과 끝의 사이에 무엇을 하였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으며, 어떤 계기로 갈등을 겪고, 이를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을 하다가 실패했는지, 어느 일방이 여러 차례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를 주었는지, 조절할 수 없는 외부적인 상황은 어떠하였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시작과 끝. 그것에만 관심이 있다. 당사자가 그 중간 영역에 관해 이야기할 경우, 인내심을 발휘해 경청해 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짧고 격하게 축하해 주거나 좀더 길게 위로해 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시작과 끝 사이의 즐거움과 고통의 경험 전부는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고, 자신 이외에 관심을 가지는 타인이 없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제 고통은 전부 자신의 몫이고 문제일 뿐이다.
만남과 이별, 그 끝과 시작은 인생의 어느 구간에서 벌어진 편린에 불과하다. 삶 전체 구간의 잣대에서 바라볼 때, 특정한 누군가와의 부분적인 삶의 단편일 뿐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될 수 있는, 일회적인 경험은 아니다.
이별에 대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무시할 필요도 없다. 그저 느껴지는 대로 슬퍼하고 무너지는 대로 무너졌다가 일어나면 그 뿐이다. 간헐적인 추억일 뿐 지속적이고 영원한 의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