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아버지들은 할 말이 많다. 처자식을 위해서 아니꼬운 상사의 갈굼을 견뎌내고 소득의 대부분을 만져보지도 못 하고 집에 가져다 바치는 삶을 살아왔음에도 자녀들과 배우자에게 대우를 못 받을까. 물론, 바람직한 아버지들도 있다. 대우를 제대로 받는. 하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고생하고 헌신한 것에 비해 돌아오는 비난의 양은 크고, 값어치를 인정받는 양은 극히 소량이다.
잔정이 부족하다.
지금은 많은 아버지들이 표현을 잘 하지만, 종전 아버지들은 사랑과 애정의 표현에 인색했다. 그리고, 그 표현이 어색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 이런 맥심을 배우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눈물은 다수를 불안으로 몰아간다고 배웠다. 그래서 참는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배웠다.
잔정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족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이 부족하고, 아버지 자신을 가족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면서 속내는 '고생하는 것을 알아주겠지'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진다. 하지만, 가족들은 냉랭한 아버지의 모습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공자왈, 맹자왈 좋은 얘기를 하더라도 이는 깊은 감명을 가족에게 선사하기는 커녕 잔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게 된다.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때에 맞지 않는 생색을 강압적으로 표현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사냥을 하고,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이다. 반면 가족들은 먹을거리를 물어다 주는 아버지를 당연히 존중하고 아버지의 표정변화 하나에도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생계가 아버지에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가족들의 생계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이유로 기분내키는데로, 성질을 부리듯 가족들을 억압하는 표현을 때때로 해 왔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서울 때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모든 것을 그만둔다고 말할 때 향후 인생의 향방이 걱정스럽다. 마누라는 이런 남편의 눈치를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참게 된다.
늙고 병들어 연약해 지면 의지하고 싶어지지만 이는 또 하나의 반전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퇴직을 하거나 사업전선에서 은퇴하게 되면 황혼이혼을 당하거나 가족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이고 버림당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자초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완력이 있을 때, 가족을 먹이고 부림의 대상으로 대해 왔기 때문에 맥빠진 사자왕처럼 이제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도 아닐 뿐더러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가 실권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같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다.
세상이 변했다. 아버지의 경험과 삶의 노하우가 유전되어야만 마땅한 그런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고자세를 유지해서는 안된다. 당장이라도 가족들에게 삶의 고됨을 부드러운 화법으로 토로하고, 위로받고, 가족들의 고뇌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겪는 고통에 비하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부터 버리고, 잔정을 부릴 필요가 있다. "나도 힘들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 쪽팔린다 생각말고 가족의 정성을 요청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