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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7. 2023

외할머니와 닭

사라지는 등장인물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사야 할 것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볼펜으로 그것을 적었다. 나는 글자를 알지 못했지만 그 종이를 할머니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할머니가 한복 치마를 위로 올려 허리를 묶어 두었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 접힌 시장바구니를 겨드랑이에 꼈다. 그러면 할머니의 외출 준비가 다 된 것이다. 나는 빈손으로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 할머니는 집 문을 나서고 나면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할머니의 손은 커다랗고 손마디의 뼈가 굵고 손바닥이 부드럽지 않았다. 굳은살이 전체적으로 손바닥에 퍼져있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손과는 다른 손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주면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시장까지 가는 길을 걸으면서 나는 무수히 많이 할머니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질문이 무엇이든 조용히 답을 해주셨다.

시장은 언제나 내게 새로운 구경거리를 주었다.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지만 내가 보지 못하던 많은 것들이 모여있었다. 상점들의 갖가지 물건과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는데 정신을 팔린 나는 울퉁불퉁한 시장의 흙바닥 길에 곧잘 넘어질뻔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혹시 돌에 발이 걸릴까 또는 움푹 파여 있는 물 구덩이에 발을 적실까 내 손을 힘주어 잡고 나를 살짝 들어서 이리저리 피하게 움직여 주셨다. 아마도 누군가 멀리서 본다면 나는 인형극에서 실에 매달려 있는 인형처럼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시장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할머니가 내 손을 힘껏 쥐고 살짝 나를 들어 올려주던 그 강하면서도 재미난 느낌을 기억한다.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할머니는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를 때 말고는 내 손을 잘 놓지 않으셨다.

시장은 항상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가끔씩 자전거와 지게꾼도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다녔다. 나는 그 복잡한 시장통에서 상점마다 할머니와 물건을 사러 들렀다. 모든 물건을 살 때 할머니는 그냥 사는 법이 없었다. 항상 가격을 묻고 흥정을 하고 물건을 손으로 일일이 만져봤다. 그게 과일이거나 채소일 때는 물론이고 생선을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거침없이 생선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거나 만져보았다. 나는 비린내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할머니가 생선을 고를 때면 나는 슬그머니 할머니 손을 놓고 조금 떨어져 구경을 했다. 할머니는 특히 제사상에 놓일 조기를 고를 때 가장 신중을 기했다. 여러 번 조기를 만져보고 크기나 빛깔을 비교했다. 그러나 조기를 제외하면 다른 생선들은 그다지 오래 고르지 않았다. 할머니가 생선을 고르고 나면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서 모든 생선들은 아주 재빨리 해체되었다. 아마도 생선 장수들은 고른 생선을 바로 해체 시킴으로 더 이상의 흥정 없이 물건이 팔렸다는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생선 장수들의 리듬감 있고 빠른 생선의 해체 작업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도 내 기억에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구입 품목은 닭이다. 내가 어릴 때 시장 안에 모든 닭들은 살아서 닭장 안에서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제사 때문에 시장에 갈 때는 닭을 사지는 않았지만 보통 때는 꼭 닭을 사러 닭 집에 들어갔다. 닭집은 냄새가 나고 푸드덕 거리는 닭들의 날갯짓 소리와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가게 밖에서 할머니는 닭장 안의 닭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닭을 가리켰다. 그러면 닭집 주인이 닭장에서 손을 뻗어 닭의 날개를 잡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는 닭을 받아 직접 들어보았다. 아마도 무게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가 할머니가 닭을 정하면 주인은 닭 집 밖에 있던 펄펄 끓는 커다란 솥에 선택된 닭을 집어넣었다. 솥으로 들어가 기전에 닭이 푸드덕거리고 크게 울었다. 그리고 좀 있으면 주인은 솥에서 닭을 꺼내서 어떤 기계의 네모난 입구에 넣었다. 그때 닭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다시 들렸다. 물에 삶아져서 기절했던 닭이 살아난 것인지 아니면 닭장의 닭들의 소리인지는 정확지가 않다. 어쨌든 그 세탁기 같은 기계에서 돌던 닭이 아래 통으로 떨어지면 털이 뽑혀있었다. 그리고 주인은 날렵하게 닭을 커다란 나무 도마에 놓고 해체했다. 

나는 그 어지럽고 시끄럽던 닭장의 닭들이 하얀 닭고기 조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 내 오래된 기억이 이 자세한 과정을 왜곡해서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때 시장의 닭집에 갈 때마다 이런 과정으로 닭고기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닭고기는 봉투에 담겨 할머니 손에 건네졌다. 나는 그날 보았던 닭집의 풍경을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내게는 매번 놀라운 풍경이었지만 식구들은 덤덤하게 받아들여서 내가 말하는 흥미를 잃게 했다. 어머니만 나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셨다. 아마도 내가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것 자체를 즐거이 보셨던 것 같다. 

나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 중에 감자와 당근을 넣고 간장으로 조린 닭조림을 가장 좋아했다.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한 닭고기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닭조림을 해주고 옆에서 내가 먹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고기를 뜯어주기도 하고 감자를 쪼개주기도 하면서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보셨다. 같이 먹자고 하면 할머니는 항상 배가 부르다고 사양하셨다. 이제는 시장에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직접 닭을 잡아서 파는 닭집도 본 적이 없다. 할머니도 안 계신다. 남은 건 할머니의 굳은살 베긴 거칠지만 따뜻한 손바닥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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