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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24. 2023

목욕탕 기둥이 보인다

도시스케치_통영

나는 어부의 삶을 살아온 걸까? 바다만 오면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해가 뜨는 건지 마는 건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일출 시간이 다가왔다. 구름 낀 뿌연 바다 위의 해를 보고 호텔을 나왔다. 구름 덮인 하늘 때문에 덥지는 않았다. 해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는 차를 몰고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을 운전했다. 여기저기 들어갈 수 있는 항구는 다 들어가서 해안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아직 이른 시간이다. 

어느 이름도 기억 안나는 항구에 차를 대고 바다를 보는데 작은 배 한 척이 항구를 출발했다. 하얀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 고요하다. 주변에는 대화를 나눌 한가한 고양이나 강아지도 없었다. 이상하게 이 도시에는 느긋하게 동네를 거니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없다. 나만 시간이 많았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머리를 굴리며 구름 덮인 하늘을 쳐다봤다. 


통영시내는 복잡하다. 그건 내가 꿈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간 통영도 그랬다. 그래서 이제 나의 통영에 대한 기억은 사실이 되었다. 복잡한 항구 주변을 차로 몇 번 돌다가 주차를 했다. 골목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피랑으로 향했다. 신호등을 건너고 항구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에는 시장을 두고 걷는다. 냄새가 난다. 최근에 다녀본 도시 중에 이렇게 상쾌하지 않은 시장 냄새가 나는 곳은 없었다. 이건 바닷가 시장에서 나는 비린내가 아니라 뭔가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하수구에서 나는 오물 냄새다. 
냄새 때문인지 사람이 걷는 길도 몹시 좁은 게 맘에 안 든다. 날은 덥고 냄새는 나고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고 길은 좁다. 동피랑으로 올라가는 골목에 표지판을 보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서 커다란 나무와 정자가 있다. 그 맞은편이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골목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다. 나무는 아주 크고 오래돼 보였다. 잎도 무성했다. 무슨 나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흔하게 보던 나무가 아니었다. 


나는 정자나무 맞은 편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올라갔다. 몇 번을 집과 집사이의 좁은 길과 계단을 지나 전망이 보이는 계단의 중간쯤에 서서 아래를 봤다. 내가 지나왔던 냄새나던 항구와 시장이 보이고 바다가 보인다. 떨어져 있으니 오래된 항구와 시장의 건물들이 볼만하다. 하지만 이 길은 어딘가 내가 많이 올라 본 길 같다. 오래된 동네 골목과 벽들에 그려진 벽화는 너무 식상하다. 


골목을 돌고 돌아서 꼭대기에 전망대와 정자가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정자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 분들이 대여섯 명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삼천포가 없어졌더라고. 삼천포가 사천이라고 바뀌었데." 그 말이 내 귀에 들렸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사방을 둘러보고 목욕탕 기둥을 봤다. 아까 주차를 하고 나오다가 크게 보이던 기둥이었다. 내가 차를 세워둔 곳에서 얼마나 많이 걸어왔는지 가늠이 되었다. 

어르신들 무리와 내가 비슷하게 전망대를 벗어났다. 나는 올라온 골목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중간중간에 카페와 벽화와 좁은 골목 사이의 아랫동네 뷰가 보였다. 이제 올라오는 연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사진을 찍는다. 찍을게 많아 보였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골목에서 바다의 그림을 온통 칠한 파란 벽을 찍었다. 저 아래 항구에 있는 바다보다 온통 푸른 벽의 바다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까 올라왔던 입구의 정자를 지나치는데 전망대에서 본 어르신 일행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분들이 지나친 정자에 있던 이름 모를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친구들 일행의 뒷모습이 잘 어울렸다. 나는 터벅거리며 이름 모를 꽤 괜찮은 나무를 지나쳐 어르신들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다시 냄새나는 시장 길을 걸을 때도 그 일행분들이 나보다 대여섯 걸음 앞에 있었다. 중간쯤 가다가 어르신들은 생선을 흥정했다. 나는 그분들을 지나쳐 주차장을 찾아서 목욕탕 기둥이 있는 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날 나는 아름다운 바다도 보고 쓰레기통을 뒤지던 검은 점이 있는 배고픈 고양이도 만났다. 하지만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친구들의 뒷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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