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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Dec 10. 2023

왕새우 튀김은 없었다

도시 스케치_영종도

바람은 차가 왔지만 햇살이 따뜻한 가을이었다. 나는 문득 왕새우 튀김이 먹고 싶었다.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지만 내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가서 사 먹으려고 인천까지 차를 몰았다. 네이버에서 찾아본 가게를 가기 전에 있는 바닷가 공원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은 한가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이 걸어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가다 보니 계속 가면 바다를 보면서 탈 수 있는 레일바이크 시설이 있었다. 왼쪽으로는 잔잔한 바다가 보였다. 


나는 왼쪽 길을 택했다. 길은 산을 끼고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사실 바다는 그저 그랬다. 푸른 물결이나 하얀 거품이 일렁이는 파도는 보이지 않았다. 밀물시간이었는지 검은 뻘이 보이고 바위가 듬성듬성 보였다. 멀리 아파트 단지와 다리도 보였다. 공해 때문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내 눈의 시력 때문인지 흐릿하게 보였다. 바다는 어떤 감동도 주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바다를 보면서 가을 햇살을 맞으며 조용히 걷는 건 좋았다. 멀리 길의 끝자락쯤에는 데크 길도 보였고 바다를 향해서 내려갈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있는 넓은 계단도 보였다. 


바다를 따라 길은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나는 중간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그때 내 뒤에서 세명의 사람이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두 명은 걸어오고 있었고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언뜻 아까 주차장에서 내가 봤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그 일행과 나의 간격은 점점 좁아졌다. 


반대 방향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명의 일행과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렸다. "계속 가면 바다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그다음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 세명의 일행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엄마 저기 봐." 무척 밝은 목소리였다. 내가 주차장에서 언뜻 봤던 대로 아마도 어머니와 딸부부 일행인 것 같았다. 


문득 몇 년 전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능을 산책했던 때가 기억났다. 추석이어서 햇살이 참 따뜻하면서도 하늘이 맑았다. 그리고 그 얼마 뒤에는 오늘같이 좀 더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는데 할머니와 강화도 바다로 드라이브도 갔었다. 누군가에게도 추억이 될 이 가을의 날씨와 바다 그리고 햇살과 바람은 오늘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데크길로 바뀌었다. 데크 길의 끝에 계단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있고 물 빠진 바다에도 몇몇 사람들과 아이들이 보였다. 뻘에서 뭔가를 캐려고 하는지 주끄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바다 구경은 하지 않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데크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내가 지나갈 길에 커다란 스탠더드 푸들이 정자에 앉아서 쉬는 일행들 옆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주인이 내가 오는 걸 보고 이름을 불러서 푸들을 끌어들였다.


정자를 지나 바다를 등지고 살짝 언덕길을 오르자 호텔 같은 건물의 뒤편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 큰길로 나왔다. 길마다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사람이나 차들은 아까 공원보다 더 적었다. 건물 사이로 황량함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봤다.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편의점도 보였고 왕새우 튀김집도 보였다. 횟집도 보였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만 사람들이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는 그런 서해바다 같은 동네였다. 하지만 여전히 태양은 눈부시고 바람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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