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현실_사치스러운 도서관
어릴 적의 나는 책을 읽기 싫어했다. 책이라는 것을 잡고 읽는 것보다는 티브이를 통해 만화를 보는 걸 훨씬 좋아했다. 그건 티브이에서 나오는 만화는 글씨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과 귀를 통해 생생하게 느끼는 생동감이 있어서 티브이 만화가 좋았다.
이상하게 티브이가 시작하기 직전의 오후는 지루했다. 조용하고 지루한 오후가 되면 나는 티브이 앞에 앉아서 만화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건 나의 삶의 일정한 루틴이었다. 그때 그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특별한 날 빼고는 나는 항상 티브이가 시작하기 전부터 기다렸다. 티브이 화면에 세로줄이 쳐진 화면조정시간이 나오는 걸 보고 그 후에 조금 지나면 무궁화 꽃과 태극기가 휘날리며 애국가가 나왔다.
티브이 시간의 시작은 그렇게 지루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조금 견디면 내가 좋아하는 톰과 제리 만화도 하고 이겨라 승리호도 했다. 나는 톰이 되어서 제리를 어떻게든 잡고 싶어서 안타까워했다. 승리호의 주제가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악당들을 잡으러 날쌔게 출동하기도 했다. 만화 보는 이른 저녁 시간이 내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온 세포의 신경을 쏟아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만화의 생동감이 영화로 이어져서 나는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책보다는 영화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늦게까지 빠삐용이나 콰이강의 다리 같은 고전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다.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써야 할 때는 책에 대한 줄거리를 들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독후감을 쓸 정도였다. 단지 문자가 종이 위에 배열되어 있는 게 책인데 그것을 읽고 어떤 감동을 받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때 여름 방학에 방바닥에 굴러 다니던 꽤 두꺼운 테스라는 책을 읽다가 한 번에 다 읽어 버리게 되었다. 그 책이 대단한 감동을 주었거나 재미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히 두꺼웠는데 계속 읽다 보니 다 읽혀서 나도 신기해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에 돌아다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책을 좋아해서 집안에 서재가 있었는데 창을 빼고는 삼면이 다 책으로 둘러 싸여있었다. 거기에 아버지가 대학생 때보던 플라톤의 독백과 같은 철학책부터 김찬삼 여행기나 세계 미술 화집 등 온갖 책들이 있었다. 나는 매일 그 방에 들어가 책들을 뒤지며 읽기도 하고 그냥 보고 닫기도 하면서 책과 놀기 시작했다.
그때 오래된 책들에서 나던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약간 바랜 누런 종이의 굳은 질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만화와 영화의 세계를 벗어나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 이후로 내가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내 주변에 책은 항상 많았고 나는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손에 잡히는 대로 책들을 읽었다. 내가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집에는 항상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러시아 고전까지 눈을 돌리면 집안에 책들이 놓여있었다. 내가 관심을 주자 책들이 집안 곳곳에서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안의 누워있던 글자들이 살아났다. 책 안에 글자들이 온갖 상상력을 나에게 불어넣었다. 만화나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책의 세계였다.
시간이 흘러 책의 소유에 욕심이 생긴 건 대학교 때 도서관이라는 책 냄새 가득한 장소를 만나고부터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도서관은 커다란 두 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이어진 건물의 아래를 지나 입구를 들어갈 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에서 양쪽 건물 중 왼쪽은 유리 벽으로 넓게 1층이 보였다. 책상이 놓여있는 공부하는 공간이었다. 오른편은 책을 빌리는 데스크가 1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유리벽으로 된 책상이 무수히 많은 1층을 가기보다는 책들이 쌓여있는 반대편 건물로 갔다. 2층으로 올라가 책장 주변과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서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거기는 끝이 안 보이게 넓은 공간에 책꽂이가 겹겹이 놓여있고 책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오래된 책을 찾아 읽을 때 뻣뻣하고 누런 종이와 그것을 만졌을 때 내 손가락의 땀을 마르게 하던 미세하게 묻어나는 책의 부식된 가루가 좋았다.
시간이 흘렀다.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책꽂이가 필요한지 인테리어 업자는 내게 물었다. 하지만 겨우 한쪽 면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서재를 갖지 못했다. 그저 거실의 한쪽이 책꽂이가 되었다. 그 무렵 중국에 사는 돈이 많던 중국 친구는 아파트를 하나 사서 서재로 만들었다. 그 아파트는 모든 방이 책들로 가득했다. 쌓여있는 책들은 대부분 펼쳐보지도 않은 완전한 새 책이었다. 읽지 않는 책을 왜 사모으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책에 대한 열정이 부러웠다.
그때 그 친구를 보면서 만약 내가 나만의 도서관을 지을 수 있다면 책의 종류별로 책의 집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전은 왠지 차분한 장소에서 읽고 싶다. 고전을 모아둔 집은 되도록이면 숲 속에 있는 단층집이면 좋겠다. 산책도 가끔 하면서 읽으면 눈이나 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 것 같다. 과학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니 내가 사는 집에 가까운 곳에 도시 한 복판에 책의 집을 만들어 놓은 게 좋겠다. 거기에는 책 이외에 도시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는 아직 반도 못 읽은 프루스트 책을 읽으러 고전 소설집으로 가봐야겠군." "흠, 퇴근하면서 메트 리들리 책을 읽으러 과학책이 있는 집으로 들렀다 가야지." 책의 장르를 넘나드는 독서를 하면서 짧은 여행까지 할 수 있으니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귀찮은 일도 있다. 한 밤중에 문득 '까뮈가 이런 말을 최초의 인간에서 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든다. 근데 책은 내가 사는 집에 없다. 빨리 찾아보고 싶은데 당장 할 수가 없다. 그럼 밤새 기다리거나 밤 중에 책의 집으로 여행을 가야 할 수도 있다.
현실은 내 책꽂이는 이미 다 찼다. 그리고 내가 읽다가 만 책과 읽으려고 꺼내 놓은 책이 내 책상 위를 두세 겹 책상 위로 점령했다. 그러면 한 번씩 같이 데리고 있을 책과 아닌 책을 구분해서 책장을 정리하고 중고서점에 판다. 팔아치운 책은 귀신같이 기억에 없어진다.
몇몇 기억에 남는 책도 있다. 명성에 비해서 정말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책은 그 자체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문장이나 장면이 떠올라 다시 읽고 싶어 졌는데 물리적으로 책꽂이에 없던 책은 없다. 결국 내 안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책은 내 책장에도 머물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벽 한 면의 책꽂이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