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일기_2024년 1월 1일
1월 1일은 특별한 날이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서 특별하다. 그렇다고 별거 없지만 시간의 여유가 1월 1일 일출을 보러 가는 낙이 있다. 작년에는 올림픽대로를 드라이브하다가 우연히 해가 강 멀리에서 뜨는 것을 다리 위에서 봤다. 날도 맑아서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태양이 보기 좋았었다.
그 기억이 좋아서 올해도 어디 가서 일출이나 봐야지 하고 12월이 되면서부터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에 사무실에서 집을 오가는 길에 동네 공원에서 해맞이 행사가 있다고 쓰여있는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다. 마침 그 공원은 한강 바로 옆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는 공원이라 꼭 해맞이를 보지 않아도 나도 가끔 산책을 가던 곳이었다. 해맞이 행사가 있던 없던 그 장소가 강을 보면서 일출을 보기에 괜찮은 장소라 나도 가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12월 내내 사무실에서 나와서 길을 건너는 신호등에 걸리면 맞은편에 해맞이 행사플래카드가 항상 나를 보라는 듯이 펄럭였다. 어느 날 밑에 글씨를 자세히 보니 무료 떡국 나눔이 있다고 써져 있었다. 나는 요즘 누가 무료로 나눠주는 떡국을 좋아라 하고 먹을까 생각했지만 설날이라 떡국을 먹는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떡국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는 전설 같은 게 별로 내 귀에 들려오지 않은지 오래였다. 요즘 떡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떡이란 탄수화물을 고밀도로 만들어 놓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드디어 설날이 되었다. 웬일인지 아침 여섯 시부터 잠이 깼다. 일출 시간을 확인해 보니 7시 40분쯤이었다. 나는 티브이를 보면서 천천히 준비하다가 일곱 시가 다되어서 날이 어두운데도 슬슬 걸어서 일출을 보러 나갔다. 며칠 전부터 눈이 내려서 보도의 음지쪽의 길에는 눈이 녹지 않은 길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길에는 휴일임에도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사방에 안개가 몹시 짙게 끼어있었다. 하늘도 그렇고 길가도 그렇고 딱 봐도 일출이 보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산책하는 기분으로 계속 걸었다. 공원 쪽으로 가는 마지막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있었다. 대부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신호등을 건너 맞은편의 큰길로 직진으로 죽 가면 오른쪽으로는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 옆으로는 작은 주차장 겸 공원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올림픽대로를 건너 한강 공원으로 가는 지하통로가 있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은 공원을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는지 어느 쪽으로 가는지 지도를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공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직전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는 떡국을 나눠줄 천막이 쳐있고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쳐서 지하통로를 지나 한강 공원으로 갔다. 새벽부터 달리기 동호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뛰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참을 강을 산책하면서 봐도 해는 어딘가 떴는데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너무 짙었다. 삼십 분쯤 산책을 하고 지하통로를 지나서 공원 입구에 왔다. 떡국을 나눠주는 천막에서는 분주하게 떡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으로 떡국을 먹으려고 줄을 서있는 게 보였다. 설마 했는데 줄은 끝이 안보일정도로 길었다.
나는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에서 한강을 보는데 안개를 뚫고 드디어 해가 나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해를 보면서 있는데 사람들이 해가 나왔다고 하면서 점점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올림픽대로에 불법 주차를 하고 강 옆에서 해를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경찰이 확성기에 대고 차를 치우라는 소리가 계속 시끄럽게 들렸다. 올림픽대로에 평소라면 그렇게 주차를 못할 텐데 일출 본다는 핑계를 대고 그렇게 주차를 해도 되는 건지 내 이해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 아래쪽 공원 입구로 다시 내려오는데 떡국 줄이 아까 올라갈 때보다 더 멀리까지 이어져있었다. 그런데 뭔가 준비가 안되었는지 떡국은 끓지도 않는지 솥에서는 연기도 안 나고 배식도 안 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차장 한 구석에서 누군가 버너에 불 피우다가 뭔가에 불이 붙어서 주차장 가운데로 갖고 나와서 위험하게 한참을 끄는 게 보였다. 여러 명이 서서 그러는 것을 보니 무슨 동호회 모임인 것 같았다. 평소에도 서울 한복판 공영 주차장에서 그렇게 불 피워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건지 나만 모르는 문화가 잿더미와 연기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공원 입구에서 큰길로 가는 신호등까지 가는 길에 족히 백 미터는 되는 떡국줄 옆을 지나왔다. 떡국이 만들기 어려운 음식도 아니고 동네 사람이라면 집에 들어가서 만들어 먹어도 줄 서는 시간보다 덜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딴 동네 사람이라면 해맞이 보러 온 김에 떡국 준다니까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서 먹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로서는 1월 1일 아침부터 이런저런 풍경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낯선 게 많구나 또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