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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May 07. 2024

구름과 함께 서성거리다

도시 스케치_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의 호텔은 주변도 호텔도 모두 모던했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카운터 쪽으로 갔다. 오른쪽에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작은 편의점이 있었다. 왼쪽에는 미술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단순하지만 반짝이는 소파와 탁자들이 보였다.


체크인을 담당하는 직원은 키가 아주 크고 말랐으며 희미하게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뽀빠이 만화의 올리브를 연상시켰다. 키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유리로 되어 있는 벽 밖으로 싸늘한 도시와 거리가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유리로 된 벽으로 이어진 다리 사이를 두고 방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다리를 건너 내 방을 찾아갔다. 방문은 코발트블루였다. 문 앞에 키를 대는데 불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내가 뭔가 틀리게 했나 두리번거리면서 키를 방문에 댔다.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비에 내려가서 이야기를 하고 키를 다시 받는데 속속 나와 같은 고객들이 몰려왔다. 호텔의 모던함과 로비 직원의 흐릿한 인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일이 다 끝나고 시간이 남았다. 마침 내가 있던 곳에서 반고흐 미술관은 오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예약을 안 했으니 미술관에 들어가서 그림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나마 미술관을 보고 싶었다. 


미술관은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있는 공원을 끼고 있었다. 미술관 건물은 유리돔 형식의 건물과 벽돌 건물이 혼재되어 있었다. 딱히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면은 없었다. 건축가가 누군지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먹을 만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많고 가격도 비싸고 메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블록 정도 뒤쪽으로 가니 명품을 파는 거리가 이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날씨는 왜 그렇게 추운지 봄이라고 하기보다는 겨울에 가까웠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게다가 구름이 태양 주변을 수시로 오갔다. 점점 미술관을 향해서 가는데 오래된 가게들이 즐비한 큰 길가에 라이카 카메라 매장이 보였다. 카메라를 보려고 매장 앞에 가는데 그 옆에 오래된 나무간판을 하고 있는 낡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커리 카페라고 쓰여있는데 일단 외관이 고풍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 매장은 닫혀있어서 밖에서 들여다보다가 옆의 카페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젤라토와 샌드위치가 진열대가 있고 뒤쪽으로는 커피 머신이 있었다. 


진열대 앞에서 주문을 하고 안쪽의 자리로 들어가는 시스템인데 진열대 옆에도 일인용 탁자다 있어서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사람들이 들낙 거리는 것을 보니 안쪽은 언뜻 보기에 테이블이 꽤 있는 것 같았다. 주문을 받는 사람과 커피를 뽑는 사람은 모두 젊은 여자였다. 주문을 하기 위해서 기다리면서 보니 굉장히 친절했다. 친절하지만 희미하게 일하는 호텔 직원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직원보다는 좀 더 밝고 뚜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진열대에 있는 샌드위치중에는 연어샌드위치가 먹음직스러웠다. 젤라토도 먹고 싶었지만 연어샌드위치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은 계산을 마치자 내게 연어 샌드위치는 바로 접시에 담아주고 커피는 나오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말하는 표정도 말투도 확실히 밝고 친절했다.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이 복도에 붙어 있고 그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네 명이 앉는 테이블 세 개가 한단 위쪽에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문은 안 달려 있지만 문을 통과해서 다시 커다란 공간에 네 명이 앉는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그쪽은 이미 많은 사람이 복작거리고 빈자리를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카운터 옆쪽이 보이는 한단 위쪽에 올라가 있는 네 명 테이블의 가장 왼쪽에 앉았다.


내 앞쪽으로는 나무로 된 손잡이가 있는 계단이 두 바퀴 정도 돌아서 밑으로 내려가는 공간이 있고 그 왼쪽 옆쪽으로는 커피 머신이 있는 카운터였다. 샌드위치는 보기보다 더 맛있었고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내 앞에 있는 계단으로 사람들이 가끔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았다. 보아하니 저곳으로 내려가면 화장실이 있는 것 같았다.


손님들은 계속 들어오고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뽑는 직원은 쉴 새 없이 커피를 뽑았다. 내 에스프레소도 곧 나왔다. 바쁜 와중에도 내 에스프레소를 웃으면서 가져다가 주었다. 역시 네덜란드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생각하는데 내 그릇을 치워도 좋겠냐고 아르바이트생이 묻는다. 아까부터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는 십 대 소녀가 보였는데 그녀였다. 표정이 뭔가 불만이 가득 차있다. 세계 어디든 그 나이 때는 불만이 많구나 생각하며 접시를 건넸다. 


화장실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은 상당히 좁고 360도로 두 번 돌아 내려가서 웬만큼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전부터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집안의 계단을 한 명이 올라가기도 몹시 좁게 만들어 놓은 것을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과거에 이 사람들은 지금보다 몸집이 길고 가늘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반 고흐 미술관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번에는 아까 들어온 쪽이 아니라 아래쪽에서 들어가서 그런지 건물의 다른 면도 보고 주변의 잔디광장과 나무들도 눈에 들어왔다. 입장 시간인지 미술관 옆으로 줄을 선 사람들이 늘어섰다. 그 옆을 지나가면서 보니 입장한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미술관 안으로 내려간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나는 부럽게 그들을 바라봤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저기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죠?" "예약을 안 했으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미술관 안에는 카페도 있는지 입구를 지나 다른 쪽 건물에는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사람도 보인다. 휴지 하나 떨어지지 않았고 아무도 밟지 않는 반듯한 잔디밭 주변을 서성였다. 개들을 끌고 산책하는 사람과 나무 사이에 벤치에 앉아 잔디를 바라보는 사람을 구경했다. 


왠지 이 미술관 건물들이 반고흐하고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저 안에 살아있을 때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한 사람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가 꿈꾸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그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였을까? 바람은 세게 불고 불었다. 비가 올 듯이 구름은 태양을 가리고 나는 미술관 주변을 계속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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