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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0. 2023

아메리칸드림

도시스케치_뉴욕 배터리파크 유람선에서 본 모자

배터리 파크에서 배를 탔다.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관광객들이 하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한 겨울이었다. 거리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2월 뉴욕의 겨울은 많이 춥지는 않았다. 하지만 맑은 날씨에 고층 빌딩 사이로 이따금 휘몰아치는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표를 사고 시간이 되어서 배에 올랐다. 생각보다 배는 컸다. 표를 사고 기다릴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뉴욕이라는 거대한 관광지에 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배 안은 가운데가 비어있고 창가 가장자리에 둘러져 앉을자리가 있는 구조였다. 나는 줄 앞에 서 있었기에 배를 타서 가운데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고 배가 꽉 찼다. 빈자리는 없었고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도 자리보다 사람이 많았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도 꽉 차 있었다. 유람선이라기보다는 이민을 떠나는 배같이 열악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붐비는 배라면 타지 않을 걸 하는 후회가 조금 밀려왔다.


드디어 배가 항구를 떠났다. 나는 배안에서 멀어져 가는 맨해튼의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번도 맨해튼을 멀리서 본 적이 없었는데 그 거대한 빌딩의 숲이 검푸른 바다와 잘 어울린 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그것도 지루해졌다. 모르는 사람들로 꽉 차있는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아이 엄마와 내 옆에 앉아 있는 아이의 행동과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자리가 없어서 엄마는 그 애 앞에 서 있었다. 아이에게 과자 같은 간식을 주면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중동이나 인도 계열의 인종이었다. 그리 부유해 보이지 않는 옷차람이었다. 정확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내 눈에는 그녀가 입은 밤색의 모직 코트와 그 밑으로 나온 긴치마가 추워 보였다. 아이가 자꾸 일어나려 하자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손에 들고 아이에게 주는 과자가 일반적인 과자가 아니었다. 오레오나 팝콘 같은 그런 과자가 아니라 하얗고 납작한 쌀가루 같은 것이 투명한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쌀을 튀긴 튀밥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더 작은 하얀 알갱이였다.


나는 안보는 척하면서 유심히 그 모자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영어가 아니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녀가 아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썩 집중력을 발휘해서 볼 만한 것이 못되어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 모자는 관광을 온 사람이 아니라 기회의 땅 미국에 정착을 하기 위해 온 이민자들일 것이다. 관광으로 왔다면 엄마와 아들만 다니지 않을 것이고, 과자를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서 준비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모자의 모습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심심하지 않게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까지 갈 수 있었다. 


섬에 도착하자 방송이 나왔고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가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으로 올라갔다. 그 후 돌아오는 배에서 그 모자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뉴욕에 갈 때마다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을 볼 때마다 그 모자가 떠오른다. 특별히 그들이 지금쯤 어떤 일을 하고 어디에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 예상처럼 이민자였다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아들과 엄마는 어떤 꿈을 이루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기억난다. 그 모자에게서 나던 냄새가 있었다. 오래된 맥주 효모 냄새. 인도 레스토랑에서 시켰던 양고기 바비큐에서 나던 향신료 냄새. 대학원 다닐 때 방글라데시에서 온 친구에게서 났던 냄새. 이런 냄새들과 비슷한 냄새가 배에 타고 있던 내내 그 모자에게서 났다. 그 냄새 때문에 처음에 그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이제 나는 그때보다 많은 도시와 많은 사람들의 냄새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게 무뎌져있다. 


그 후에도 뉴욕을 여러 번 더 갔다. 호텔방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게 배터리 파크 옆에서 묵을 때도 있었다. 나 또한 세월이 흘러 아메리칸드림 비슷한 내 나름의 성공을 이루었다. 시간이 지나도 뉴욕의 추웠던 겨울 그 유람선 안에서 봤던 모자 생각이 나곤 했다. 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었을까? 이루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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