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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1. 2023

자일리톨 사탕 반통

도시 스케치_후쿠오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후쿠오카는 덥지만 구름 때문에 걸어 다녀도 많이 덥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바람이 차가운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는 강이 흘렀다. 나는 강이 흐르고 다리가 있는 동네를 걸었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어서 비가 올듯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몇몇 건축물을 보러 왔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들이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마음에 툭 들어오는 하나의 장면이 없었다. "그래 이번 여행은 허탕이다" 하고 낙담했다. 날씨도 그렇고 마음이 잔뜩 흐렸다.   


나는 오전 일찍부터 기차역으로 갔다. 겨우 이틀을 기차역을 중심으로 오가며 돌아다녔더니 오래전부터 다녀본 곳처럼 기차역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호텔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오분 거리였다. 하지만 일본어도 모르고 기차역도 낯설어서 기차 출발 시간보다 일찍 서둘렀다. 그랬더니 역시 역에는 너무 일찍 도착했다. 나는 서성거리며 플랫폼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시락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파는 상점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플랫폼의 알림판을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선로 앞으로 갔다. 


드디어 기차의 출발 시간이 되었다. 유후인으로 가는 기차는 무척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존의 신칸센의 모습과는 달리 만화에 나오는 기차처럼 클래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차 덕후였으면 그 기차의 이름과 기종을 알고 일부러 예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멋스러운 기차가 유후인을 오가는 특별한 열차 중 하나라는 것을 기차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 


기차 안은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내 옆자리도 앞자리도 모두 비어있었다. 여름휴가철이 막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때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런 한가함이 좋았다. 창밖을 보면서 푸르게 펼쳐진 논밭을 볼 때쯤 어느 역에 기차가 멈췄다. 조용했던 기차 안이 조금은 분주하고 소란스러워질 무렵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내 쪽으로 왔다.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고 그 일행인듯한 아주머니들이 복도 건너 옆자리에도 앉았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외국인인 줄 모르는지 앉으면서 뭐라고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일본어를 몰라서 그냥 웃으며 잠시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의 평범한 모습으로 봐서 동네 아주머니들끼리 유후인에 온천여행이라도 가는 줄 짐작할 뿐이었다.


창밖으로 숲이 나오고 논이 나오고 옆자리 아주머니들은 조그마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시간이 창밖의 경치와 함께 슬슬 흘러갔다. 기차가 또 어느 역에 서려고 방송을 하고 속도를 늦췄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내리는 유후인역이 종착역이므로 여기는 내가 내릴 곳이 아니란 것만 알고 있으면 됐다. 그때 내 팔을 살짝 두드리는 것 같아 옆의 아주머니를 돌아보았다. 아주머니는 일본말로 웃으면서 수줍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앞 책상 위에 사탕을 놓았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자기는 내리니까 사탕 밖에 줄게 없는데 여행 잘하라는 이야기 같았다. 신기하게도 한 두 마디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마음속으로 해석되어 들렸다. 나는 고맙다고 영어로 답을 하고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내렸다.

 

아주머니가 내리고 책상 위에 놓인 사탕을 보았다. 사탕 한 줄이 종이가 뜯어져 있고 반쯤 남아 있었다. 겉에는 자일리톨이라고 영어로 쓰여있었다. 나는 사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뭐라도 나눠 준 그 아주머니가 고마워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탕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호텔에 와서 사탕을 꺼내 먹었는데 그것은 사탕이 아니라 네모난 껌이었다. 모양이 사탕 같아서 나는 착각을 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아주머니의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나에게는 다정함으로 해석되었다. 남에게 사탕 하나도 아니고 한통도 아니고 반통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탕 반통이 후쿠오카에 대한 내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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