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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10. 2023

불면증 걸린 바다야 안녕

도시 스케치_여수

나의 여행은 차를 타거나 아니면 걷거나 둘 중에 하나다. 차를 타는 동안은 내비게이션이 나의 길을 알려준다. 걸을 때는 미리 정보를 얻거나 구글지도를 보고 대충 찾아간다. 상상과 비슷하면 길을 잘 찾고 그렇지 못하면 이정표를 의지한다. 이정표도 없으면 그냥 걸어가 본다. 지도를 다시 꺼내보는 일은 거의 없다. 길이 나오는 대로 걸어가다가 실망할 때보다는 예상치 못한 걸 발견하는 기쁨이 더 많다.


나는 길을 잃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쓴 글을 보고 케이블카 승강장까지는 잘 찾았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숲으로 나있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정표도 없다. 길은 하나뿐이니 그 길로 걸어갔다. 숲 속의 임도 같은 길로 계속가도 되는 걸까 혼자 의문을 가지면서 걸었다. 점점 더 산길 같다. 사람이 한 명도 지나가지 않았다. 날은 아직 환하지만 한 시간 내로 해가 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조용한 숲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갈등을 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린 동네 아주머니들을 따라서 갔어야 했나 살짝 후회했다. 그분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재빨리 사라졌다. 나는 바다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길도 모르는 관광객이 여유를 부린 게 잘못이었다.


어쨌거나 걷다 보니 드디어 위쪽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길이 보인다. 그리고 무슨 건물도 보인다. 갑자기 안도감이 들었다. 저기가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쪽으로 가서 지도라도 있으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탑이 있는 공원인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산책길 비슷한 게 보여서 그 길을 따라갔다. 길은 저 아래 동네를 보면서 산을 돌아 내려간다. 나는 이 길로 내려가면 유명한 포장마차 거리가 나오겠지 하고 계속 걸어 내려갔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드디어 주차장이 나오고 절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예상한 그곳은 안 나오고 가파른 언덕의 오래된 집들이 붙어 있는 동네가 나온다. 어쨌든 내려가다 보면 나오겠지 하고 골목을 걸었다. 정말 아무도 없다. 나는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가 혼자 돌아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파른 골목을 혼자 터벅거리며 걸었다.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전봇대도 있고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담벼락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없었다. 내리막 길의 끝 멀리에 등대와 바다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노을을 감상하며 전봇대 옆에 앉아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생명체여서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고양이는 여기 토박이인지 뒷모습이 여유로웠다. 나는 해가 더 지기 전에 조용한 골목을 내려가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에 있어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 사람 간의 거리가 좁아서 도시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에서 멀어지면 불안한 도시인이다.


내려오는 언덕길은 아까보다 마음이 조금 편했다. 해는 서서히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졌다. 한 편의 그림같이 움직임 없는 동네에서 노을과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 동네를 다 내려오자 차가 다니고 가게들이 보였다. 하지만 항구는 멀었다. 나는 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 항구 쪽으로 갔다. 항구에는 배도 사람도 소음도 매연도 모든 게 과하게 많았다. 

다시 도시에 돌아와서 마음은 안정되었지만 별로 할 게 없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사람들은 북적이고 바다 위에 여기저기 불이 켜졌다. 바다 위아래에 여기저기 보이는 불빛은 겹겹이 길에 세워진 싸구려 간판 불빛 같았다. 너무 과하게 인공을 덮어쓴 자연은 보기도 힘들고 자연도 힘겨워 보인다. 나는 항구 주변을 무작정 걸었다. 앉아서 바라보고 싶은 데는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내가 잘 가지 않는 흔한 별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넓었지만 사람은 많았다. 더구나 내 앞에 주문하는 사람은 주문인지 아니면 케이크구경인지 한참을 일행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포인트 결제까지 계속 물어보면서 토론을 하며 정작 주문은 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주문을 받던 단 한 명의 직원은 그제야 그들에게 주문을 나중에 하라는 말을 하고 옆의 카운터로 나를 불렀다. 느림의 미학인지 시간 낭비의 미학인지 경계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 때문에 사람보다 키아스크 주문을 좋아한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어두워진 광장과 바다를 보며 차를 마셨다. 그날 거기 바다는 흔한 별카페가 단정해 보여 들어가고 싶게 만들었다. 호텔에 가기 위해 카페를 나왔다. 아직도 바다에는 여전히 불빛이 반짝였다. 


불면증에 걸려서 잠들지 못해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바다에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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