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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8. 2023

주차비 천 원과 빈집

도시 스케치_남원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왔다. 구례는 그냥 시골 농촌 느낌이라면 남원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작다. 한쪽으로는 개울 같은 천이 흐른다. 그 앞으로 모두 낮은 건물들이다. 추어탕 집들이 보이고 커다란 한국 전통식 기와를 얹은 담과 나무 문이 있는데 유명한 정원이 보인다. 나는 그 정원을 지나 커다란 실외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러 들어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평일이라고 해도 너무나 한적한 풍경이었다. 

내가 차를 주차하자마자 어디서 왔는지 할아버지 한분이 내차의 창 앞에 서 계신다. 제복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손에 작은 수첩 같은 것을 들고 펜으로 뭔가를 열심히 적는 걸 보니 주차요금 징수원이신 것 같다. "얼마예요?" 내가 창을 내리고 주차비를 물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다시 물었다. "네? 뭐라고요?" "저공해차량이네요." 그제야 정확히 들린다. 

"아, 네. 맞습니다. 그런데 주차비는 얼마인가요?" "이천 원인데 저공해차량이라 반값이에요. 천 원." "몇 시간에요?" "하루종일 아무 때나 나가면 됩니다." 우리 동네는 주차비가 십 분에 천 이백 원하는데 여기는 하루 종일 천 원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할아버지는 주차증을 끈어서 내게 주셨다. "차 앞에 꽂아 놓고 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하루종일 천 원이라면 주차비가 참 싸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광한루원 쪽으로 걷다가 아까 차에서 본 길 건너편에 있는 천을 보고 싶어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렸다. 지나다니는 차들은 많이 없지만 신호는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건너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햇볕은 쨍쨍했다. 드디어 길을 건넜다. 낡은 계단을 올라가자 생각보다 넓은 천이 보였다. 나 말고도 산책 겸 운동을 나온 몇몇 사람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아주 띄엄띄엄 지나갔다. 나는 천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건너가 보려고 다리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다리도 천의 주변도 장마가 휩쓸고 간 황량한 모습이었다. 번쩍이는 철구조의 다리에 올라가서 반쯤 걸어 가운데 지점에 왔을 때 천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 들어오는 풍경이 이뻐서 찍은 것은 아니다. 그저 너무 할 일이 없고 다리는 건너기에는 새로이 눈길을 끄는 것도 없어서 다리까지 온 김에 그냥 찍은 거였다. 멀리 아파트 몇 채가 보였다. 그 주변에 그것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테헤란로에서 보던 높다란 건물들에 익숙해서겠지만 그래도 너무 허전했다. 다리를 다 건너지도 않고 다시 내려왔다. 광한루원에 들렀다가 남원 시내를 한번 구경하고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한루원의 입장료를 내면서 아까 주차비를 낼 때와는 다르게 4천 원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비로 천 원을 내서 입장료 4천 원이 비싸게 느껴진 건지 모른다. 근처의 시장에서 쓸 수 있는 할인 쿠폰을 줬다. 나는 종이쿠폰 자체가 부담스럽다. 모두 버려지는 비용이다.  


광한루원은 작아서 금방 입구에서 끝이 다 보였다. 딱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뭔가 나를 잡아끄는 것이 없었다. 강릉의 선교장에 갔을 때는 건물들보다는 뒤편의 오래된 소나무들을 한참 보다가 나왔다. 광한루원에서는 한참을 보고 싶은 나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카시아나무인지 연못 옆에 무성하게 잎들이 자라서 휘어져 뻗어있었다. 연못 안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잡아끌만한 매력은 없었다. 나는 빨리 이 작은 정원을 나가고 싶었다. 인위적인 것은 오래되어도 인위적이다.  

광한루원을 나와서 남원시내를 한 바퀴 걸었다. 예상대로 거리에 사람은 없었다. 대낮이지만 걷는 사람도 지나는 차도 거의 없었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도시였다. 모두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자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길 위에 태양은 뜨겁기만 했다. 어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있기도 했고 어떤 골목은 오래된 빵집이 있기도 했다. 오래된 빵집 앞에서 힐끗 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다가 들어갈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없는 곳에 들어갈 때 왠지 나에게만 시선이 몰리는 것 같다 생각이 든다. 너무나 한가한 가게는 선뜻 들어갈 수가 없다. 


딱히 갈 데가 없지만 억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한 시간쯤 걸었다. 검은곰팡이가 피고 거의 무너져 가는 빈집을 두 군데 정도 마주쳤다. 하나는 마당이 있는 이층 집이었다. 시멘트 위의 페인트는 모두 까지고 검은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한참을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외진 곳도 아니고 시내 주택가에 있는 집이 그랬다. 또 한 곳은 문부터 양철 지붕까지 낡고 녹슨 단층집인데 곰팡이는 피지 않았다. 내부가 훤히 보이게 문짝들도 없이 텅 비어서 폐가처럼 보였다. 작은 도시의 소멸을 빈 집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까 주차를 할 때 주차요원 할아버지와 천 원 하던 주차비가 생각이 났다.  차가 들어가면 번호판을 인식하고 주차요금은 키아스크 기계에 계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이 도시에 나 같은 관광객은 하루종일 아니 한 시간 이상 주차 할 일이 없다. 주차장 주인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주차비 천 원이 싼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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