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얼마 전 지인의 상가에 다녀왔다. 고인은 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코로나19 시국이라 그런지 상가는 단출했다. 예전 같으면 북적거렸을 텐데, 문상객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도 문상을 하고 상주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을 떠났다.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상주 또한 오래 있기를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코로나19가 조의(弔意) 문화도 바꾼 셈이다.
예전에는 상가에 온 건지, 아니면 친목 모임에 온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한 번 붙잡히면 12시를 넘기는 것도 부지기수였으니, 시간을 잘 봐가면서 상가에 가야 했다.
조의는 뒷전이고 주로 인맥 쌓기나 술자리가 벌어지기 일쑤인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차분히 고인을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상가 본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상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도 썩 보기 좋지 않았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고인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가를 다녀오면 자주 씁쓸했다. 코로나19라는 미지의 전염병은 우리 문화와 삶의 형태를 많이 바꾸었다. 나쁘지만은 않다.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상가를 뒤로 하고 나서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다. 늙는다는 것과 언젠가 다가올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강렬히 느끼기 위해선 죽음을 성찰하라고 했다. 사랑하는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부재를 경험해야 하듯이. 그만큼 우리에게 죽음은 먼 나라 이야기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외면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아도Pierre Hadot 역시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의 순간순간, 그날그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그 때문에 매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여기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살려면 죽음을 의식하라는 것이다. 오늘이 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남은 시간이 소중해진다. 시간의 밀도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坂本 龍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출신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암에 걸린 후 음악적 방향이 조금 더 집요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 대신 ‘지금’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소리’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2017>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 죽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을 좀 더 남기고 싶습니다."
몸이 아플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나를 가장 잘 알게 되는 시기다. 그동안 쌓아온 것이 실은 허상이었음을. 나는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삶과 죽음이 사실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함을. 삶에 닥쳐온 위기는 그렇게 나의 본질과 한계를 깨닫게 한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다. 죽음 앞에 서면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 또한 진지해질 수 없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삶과 죽음,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삶이 지루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건 동전의 한쪽 면만 보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 순간을 나중에 기억하게 될까? 벌써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은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그 시절을...
영화에서 그는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The Sheltering Sky, 1990>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Paul Bowles의 글을 다시 인용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고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 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오늘 밤 산책을 하면서 보았던 눈 덮인 인왕산의 풍경. 세상 모든 소리가 눈 속에 다 묻힌 듯, 고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나는 적막한 겨울 풍경을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제나 볼 수 있을 것 같고, 무한한 듯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살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없어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지상의 삶을 잘 갈무리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수레바퀴 시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홀로 떠나고 홀로 남는다.
맑은 날 사랑하는 사람과 햇살 고운 창가에 앉아 죽음을 생각해 보라.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몸이다."
<김선우 _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