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월요일, 그런지 평소 걷던 산책로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밤, 한동안 자기 세상을 만난 것처럼 줄기차게 울어대던 매미는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어느덧 귀뚜라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제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 사소한 변화 속에 가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인간은 느끼지 못하는 계절의 변화를 미물인 곤충들이 먼저 알고 준비하다니, 산책을 하면서 나는 귀를 기울여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계절의 감각을 잃어버린 나를 어떻게든 숨겨볼 요량이었다. 덧없이 시간은 흐르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너와 내가 희미해지는 밤, 침묵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나를 제대로 지켜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의되어야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세상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지켜야 할 나는 어떤 존재이어야만 하는가?
어느덧 시간과 사람들에 무디어져서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고 대충 살자고 생각해 보지만, 그마저도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탐탁지 않았다.
오늘 소개하는 미국 출신 밴드 '나이틀리(Nightly)',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몽환적인 밤하늘을 보는 느낌이다. 밴드명처럼 그들의 음악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좀처럼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특히 밤하늘은 더더욱. 우리의 시선은 높은 하늘이 아닌 바로 앞, 내가 딛고 있는 한 줌의 땅에 머물러 있다. 당연히 관심사도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어쨌거나.
리드보컬 조너선 카페치(Jonathan Capeci)는 언뜻 듣기에는 라우브(Lauv)의 풍조를 닮았다. 비슷한 분위기, 그러나 음악의 결은 다르다. 오늘 소개하는 곡은 'on your sleeve'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다'는 뜻을 가진 '(wear my heart) on your sleeve',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건 어린 시절뿐,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때에 따라 그렇게 살도록 요구받기도 한다. 마치 자제가 미덕인 양 여겨지는 것이다. 나답게 사는 건 그런 틀을 깨는 거고, 순간순간 주어진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나 걸리적거리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온갖 잣대로 나를 옭아매니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하늘을 봐도 심드렁해지고 마는 것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이맘때 늘 있는 그저 그런 현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런 감동도 없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나를 소모하는 것, 그 뒤에 남는 공허함, 허무. 그렇게 존재 자체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를 지켜내기 위해선, 나를 ‘기어이' 지켜내려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한 모습만 확인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계속 시도하는 것, 삶은 그런 무용한 반복의 연속이다.
반복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성격, 즉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무용해 보이지만 결코 무용하지 않은 그 반복을 통해 나는 나를 만들어간다. 물론 무엇을 반복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