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어둠이 내려 낮에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사라져 버린 늦은 밤, 적막과 어둠이 내려앉아 낮 풍경의 대부분을 지워버렸다. (백야 등 예외는 있지만) 문득 신은 왜 어두운 밤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보라는 것이 아닐까. 너무 많이 봐도 좋지 않으니 우리가 쉴 수 있도록 어둠으로 하여금 빛을 차단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은 조명을 만들어 밤을 낮처럼 살아간다. 피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고. 사는 게 힘든 것은 바로 순리대로 살지 않고 역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밤풍경을 보면서 시간에 쫓겨 각박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이제는 좀 느긋해지자고,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롭게 삶의 여백을 만들어가지고 다짐했다.
언젠가 문정희 시인도 북유럽을 여행하고 이렇게 말했다.
"북구 도시의 한 시장은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는 가로등을 얼마쯤 꺼버렸다고 한다. 시민에게 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별들을 되찾아주기 위해서였다. 낮 동안 지친 시민들이 밤의 신비를 느끼고 별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