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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어린 사람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by 서영수

가을이라서 그런지 종종 지금까지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그렇다고 노력조차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 그러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그런 삶이 반복되면 이 삶이 허무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을 바라보면서, 무엇보다 동료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은퇴한다는 소식까지 접하면, 이제 우리 세대도 끝났구나 하는 마음에 이게 뭔가 싶으면서 허무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별 의미 없이 보내기에는 살아갈 날이 아직도 많이 남은 것 또한 사실이다.


허무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허무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건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머리만 숨기면 나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믿는 것과 매한가지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삶이 허무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 삶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시선, 그 정직한 응시가 있어야만 삶의 허무함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세월 앞에서 무뎌지고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나와 무관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해야 허무함에서 벗어나 남은 삶을 의미 있고 알차게 살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나와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실체를 정직하게 직시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것일까? 자주 이 질문을 하지만 아직도 뭔가 실체로 잡히는 무엇이 없다.


가을은 이런 생각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처럼, 우리도 겉을 감싸고 있는 위선과 허물을 벗어던지고 홀로 서는 시간.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먼저 나와 나의 실상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비로소 겨울을 준비할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오다 사쿠노스케의 <가을 달무리>에 나오는 문장처럼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근심 어린 사람만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가을(秋)이란 글자 아래 마음(心)을 붙여 근심[수·愁]이라 읽은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용케 잘 생각해냈지 싶다. 정말로 근심 어린 사람은 계절 변화에 민감하다. 그중에서도 가을 기운이 불어오는 것을 남보다 더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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