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오직 자기 자신에게 맡겨지고 넘겨진 상태, 자기를 미워하는, 무섭고 만나기 싫어 피하기만 했던 뒷사람을, 오직 그/나만을 마주한 상태. 세상의 끝.
그런 시간이 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 피할 수 없는 시간. 부딪쳐야 하는 시간.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쳐다보아야 하는 시간.
이것은, 파스칼을 따라 말하면, 위대함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비참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사람은 위대하다고 파스칼은 말한다.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진정 위대하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팡세>
<이승우 ㅡ 고요한 읽기 中 세상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