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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인간관계는 술과 같다

by 서영수

인간관계는 술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마실 때는 흥겹지만, 마시고 난 후에는 숙취만 남고 허무하다는 것이다. 마치 달콤한 첫 모금 뒤에 찾아오는 쓴맛처럼, 인간관계도 처음엔 즐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처나 실망을 남길 때가 많다.


물론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최소한 가족은 친구나 지인들과 달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과 함께 하거나 자신을 위해줄 것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현실에서도 흔한 일일까?




연로한 부모를 예로 들면, 더 이상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지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게 되면 흔히 말하는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귀찮아지기 시작할 때가 온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부모를 돌보는 부담감에 힘들어한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자식들도 해야 할 일이 있고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부모를 돌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혈육 간에도 이런 거리가 생길 수 있다면, 다른 관계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는 어떨까? 같이 근무했던 동료나 후배들과의 연락은 점점 뜸해지다가 결국 끊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드문 일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쌓아온 유대감도 직장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약해질 수밖에 없고, 더 이상 공유할 연결점이 사라지거나 관심사마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관계는 소원해지다가 결국 멀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결국 언젠가 혼자가 되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된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가족들이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거라 기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혼자서도 잘 지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현실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 그 삶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돌보고,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찾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쓴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에 등장하는 안토니오나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말이다. 히라야마는 밤에 독서를 하는 것 말고도, 좋아하는 음악 테이프를 모아서 듣는 취미도 있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나이가 들어서도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자아실현의 형태가 아닐까. 혼자가 되어도 충만한 삶을 위한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길이다.


인간관계는 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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