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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by 서영수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 가방이 아닐까. (...)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 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 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 나를 숨겨준 여행 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 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박완서(1931~2011) ㅡ 잃어버린 여행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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