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어느 날,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이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설경을 바라보면서, 교통 체증이나 불편함 같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세상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눈이 모든 것을 감싸 안아 더러운 불순물을 씻어 내리고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떠오르는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 -1972)의 <설국雪國>이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과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잃고 사는지도. 특히 소설 속 문장들은 가슴 깊이 울림을 주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아픔과 허무함이 스며 있었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시마무라의 가슴 아픈 사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 아픈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사연을 '가슴 밑바닥까지 눈처럼 내려 쌓듯' 듣지 않아서 문제일 뿐. 나는 이 문장에서 한동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소설은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나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아마도 인간의 흔한 감정을 작가만의 특별한 언어로 아름답게 형상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남들은 도저히 표현하기를 포기한 한 인간의 삶을 순수한 언어로 구현한 공로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왜 사랑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처럼. 작가는 바로 그 어려움을 문장으로 완성해 내려고 했던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연인을 향한 간절함과 애틋함이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표현되는 절박함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도 그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그것이 문학, 더 정확히는 문장의 힘이라고 믿는다.
이 힘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과 대비시켜 은유화하는 데 있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다. 어떤 이들은 소설을 읽는 것이 무용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바쁘게 살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유용과 무용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할 수 없다. 때로 쓸모없음의 쓸모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시나 소설을 읽어야 한다. 미문(美文)과 맞닿을 때 비로소 잠들어 있던 정신과 감성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설국>의 첫 문장은 특히 유명하다. 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려 12년간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문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이 첫 느낌을 넘어 오래 지속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희생과 갱신의 고통이 있어야 하듯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뚜렷한 주제가 없지만,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 인생과 닮았다. 살아온 세월의 여운, 이별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안타까움이 남는 것까지도.